생명보험사의 즉시연금 판매재개 여부가 오리무중이다. 대다수 생보사들이 저금리 기조로 인한 역마진 우려와 가입 즉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품구조 탓에 판매를 중단했지만 위험요소가 해결될 뚜렷한 기미를 보이지 않자 재개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회계연도가 새롭게 시작되는 4월, 판매가 재개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지만 저금리·저성장이 이어지는 시장상황으로 인해 보험사마다 '보장성 위주 판매전략'이 세워지면서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특히 지난해 즉시연금으로 비상식적 수준의 보험료가 유입되면서 추가로 판매했다가는 수익성 하락과 역마진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즉시연금 판매를 중단한 생보사 관계자들은 "회계연도 변경에 따라 다양한 신상품을 준비하고 있지만 즉시연금 판매재개 여부는 아직까지 결정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저수익 고민인데 즉시연금 팔 수 있을까

업계 상황을 보여주듯 국내 2위 생보사인 한화생명은 즉시연금 절판마케팅이 정점에 달한 지난 2월4일 은행에서 팔던 방카슈랑스 즉시연금 판매를 중단했다. 뿐만 아니라 신한생명과 농협생명도 비과세 혜택 축소 막바지인 지난달 중순 판매를 멈췄다. 대형사를 비롯한 생보사들이 즉시연금 방카슈랑스 판매를 중단한 것은 사실상 매력이 없는 상품이란 걸 의미한다.

생보업계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여윳돈을 가진 고객이 방문하면 즉시연금에 대한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일시납이라는 즉시연금 특성상 보험료가 한번에 유치되면 그만큼 많은 판매수수료 수입을 올릴 수 있어 은행들은 판매에 박차를 가했던 것.
즉시연금 방카슈랑스의 수수료는 약 3.2%대로 보험료 1억원짜리 고객을 유치하면 320만원의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

업계에서는 대형생보사 마저 즉시연금 판매를 중단한 이유로 영업이익률과 운용자산수익률 하락을 꼽는다. 2012회계연도 3분기(10~12월) 전체 생보사 영업이익률은 3.43%로 전년 동기대비 0.79%포인트 하락했다. 문제는 지난해 3월을 기점으로 이익률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운영자산이익률도 4.90%로 전년 동기대비 0.52%포인트 내려갔다.

생보사의 한 관계자는 "이익률과 자산이익률이 하락하고 있는 시점에서 즉시연금 판매재개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금리 등 시장상황을 좀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즉시연금에 대한 비과세 혜택 축소가 1인당 2억원, 부부합산 4억원 미만으로 결정된 것도 재개 여부를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러한 세법 개정안은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고액자산가에게만 영향을 줄 뿐 목돈을 쥔 중상층의 즉시연금 가입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국내 생보사들은 또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다가오는 회계연도에는 저축성보다는 보장성상품 위주로 판매전략을 재편할 예정이다.

이 같은 전략은 저축성상품의 대표격인 즉시연금 판매재개 여부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형생보사 관계자는 "즉시연금을 비롯한 고금리 저축성상품의 판매 증가에 따른 역마진 우려로 보장성상품 위주의 판매전략이 세워졌다"고 밝혔다.

◆부메랑이 돼 돌아온 보험료 '18조원'


금융감독원 금융정보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012회계연도 1∼3분기(4~12월) 생보사 저축성상품의 신계약 누적건수는 243만1846건이었다. 전년 같은 기간에 221만576건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22만1270건이 증가했다.

특히 2012회계연도 2분기에 156만7782건이었던 이 수치는 3분기에 243만1946건까지 치솟았다. 비과세 혜택 축소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3분기 동안에만 86만4164건이 늘어난 것이다.

전체 생보사의 저축성보험 초회보험료 수입통계를 보면 이 기간에 얼마나 많은 즉시연금 보험료가 유입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2회계연도 3분기까지 전체 생보사의 저축성보험 초회보험료 수입은 총 18조3106억원이다. 전년 동기의 5조1162억원과 비교하면 무려 13조1944억원이 증가했다. 또한 2011회계연도 한해 동안 거둬들인 저축성보험 초회보험료(8조7025억원)를 훨씬 상회한다.

업계 관계자는 "비과세 혜택 축소 이슈가 나오기 시작한 6월 말 이후부터 저축성상품의 가입 건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며 "초회보험료 수입 급증은 일시납으로 판매되는 즉시연금을 통한 자급유입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즉시연금에 대한 보험료 수입이 늘어나자 고객에게 지급된 보험금 역시 큰 폭으로 증가했다. 가입 다음달부터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품 특성상 지급보험금 급증은 불가피하다.
 
2012회계연도 3분기까지 저축성보험으로 지급된 보험금은 총 3조110억원이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에 저축성보험으로 지급된 보험금 7521억원과 비교하면 2조2589억원이 늘어났다. 13조여원의 보험료 수입을 올린 반대급부로 3조여원의 보험금이 지급된 것이다.

또 다른 생보사 관계자는 "2012회계연도 3분기에 맞춰 많은 저축성보험 상품의 만기가 도래할 이유가 없다"며 "지급보험금 규모의 대폭적인 상승은 즉시연금 판매 증가에서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판매하는 곳은 단 4곳

즉시연금 판매가 한창이던 지난해 하반기, 공시이율은 4.3%대 수준으로 고금리였다. 이는 출시 첫날부터 불티나게 팔렸던 재형저축의 기본금리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즉시연금은 재형저축과 달리 금융사에는 불리한 구조의 상품이다. 예금을 유치하는 은행 입장에서 재형저축은 고금리를 제공해도 7년간 유입된 자금을 보유할 수 있어 '조달금리 부담'을 줄여주는 효자상품이다.

반면 높은 공시이율이 적용된 즉시연금은 고객에게 가입 다음달부터 연금을 지급해줘야 하기 때문에 자금유지가 어렵다는 점에서 보험사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이유로 대형사마저 즉시연금 판매중단이라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현재 국내 생보사 '빅3' 중 방카슈랑스와 설계사를 통해 정상적으로 즉시연금을 판매하고 있는 곳은 삼성생명뿐이다. 중소형사 중에서도 ING생명, 동양생명, BNP파리바카디프생명 등 4곳만 즉시연금을 판매하고 있다.

즉시연금 판매를 중단한 생보사 관계자는 "보험상품이 보험사에 효자역할을 하려면 거치기간이 오래 걸려 자산보유기간이 길어야 하는데 즉시연금은 이러한 점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아직까지 즉시연금에 대한 인기는 식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3월 1일부터 중순까지 삼성생명에 가입한 즉시연금 규모는 약 1600억원이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동양생명도 3월1일부터 21일 현재까지 280건, 211억원의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