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직접적인 가치를 반영하는 컬렉터는 점차 그 부피를 키워나가고 있다. 특히 근래 들어 더욱 활발해진 기업의 미술 후원은 개인 컬렉터가 해낼 수 없는 역량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과 같은 대형 컬렉터들의 컬렉션 정보는 빠르게 확산되며, 기업에 작품이 컬렉션 되는 것은 어느덧 작가들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기 됐다.
 
기업은 작가의 작품을 매입하며 작가들이 작업에 전념할 수 있는 생활의 활로를 찾아주고 전시 공간, 레지던시 등의 공간을 지원해주기도 하며, 보다 직접적인 마케팅 효과를 위해 작가의 감성을 수혈 받아 콜라보레이션 제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또한 다양한 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가들의 성장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미술관, 재단으로 컬렉션 범위를 넓혀가며 문화예술 후원에 일조하는 기업 컬렉션은 실제로 예술분야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

◆'문화의 꽃' 피어난 르네상스 컬렉터
 
현재와 같이 거대한 기업이 예술가를 지원하는 개념에 가장 근접한 형태의 컬렉터가 탄생한 것은 르네상스시대였다. 부를 축적한 이들은 예술 후원에 앞장섰고, 시대를 일신한 예술가들은 컬렉터들의 손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었다.
 
르네상스는 컬렉션에 진정한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은 시기로, 신에게 귀속됐던 중세의 견고한 구조에서 벗어나 걸출한 천재 작가들을 배출해냄과 동시에 아름다운 서양미술의 꽃을 피워낸 시기였다.
 
교황, 왕, 특권층 지식인들에게 컬렉션이 일반화되기 시작했고, 이들은 작품의 주문자이자 수집가인 대형 컬렉터 역할을 수행했다.
 
르네상스의 학문과 예술 후원은 단순한 과거에 대한 인식에서 그치지 않고, 고대문화의 씨앗을 피워낸 새로운 시대의 신호탄이 됐다.
 
특히 르네상스미술의 진원지이자 르네상스미술을 절정으로 꽃피운 곳은 이탈리아 피렌체였는데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산드로 보티첼리 등은 르네상스시대의 이탈리아 미술을 견인한 걸출한 대가들이었다. 이러한 작가들이 서양미술사를 빛낼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이들이 역작을 탄생시킬 수 있도록 후원한 거대 컬렉터들이 존재했다.
 
미술품 컬렉터로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이름과는 뗄 수 없는 존재로, 15~16세기 피렌체공화국에서 가장 유력하고 영향력이 있었던 시민 가문이었다.
 
15세기 은행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명이 된 조반니 비치 메디치는 피렌체를 예술의 도시로 변모시킨 주인공이다. 조반니 비치 메디치부터 그 증손자의 아들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은 메디치가의 미술품 수집은 실로 엄청난 양이었다. 은행사업의 수익은 상당부분이 예술 후원에 쓰였으며, 메디치가의 주문으로 건설되고 메디치 컬렉션 작품이 전시된 우피치(Uffizi)미술관은 미술품 전시를 위한 최초의 공공미술관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영어로 오피스(office)를 의미하는 우피치미술관에는 보티첼리의 '봄', '비너스의 탄생',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등 현재까지 중요하게 평가되는 명작들이 소장돼 있으며, 여전히 이탈리아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렇듯 정계와 문예부흥사업에 앞장서며 수백년 간 지속된 메디치가의 예술 후원은 정치적 선전과 밀접하게 결속돼 있기도 했다.
 
이외에도 16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맹위를 떨친 보르게세가문은 베르니니, 카라바조와 같은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며 보르게세미술관을 탄생시켰고 알레산드로 파르네세 역시 예술 후원에 앞장섰던, 당시 미술품 컬렉터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이렇듯 르네상스시대의 이탈리아는 거대한 컬렉터들의 예술 후원으로 인해 서양미술사의 상당부분을 할애하게 했다.

◆현대사회의 기업, '21세기 메디치가' 되길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예술품 복원과 수집의 분위기가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 현재와 같이 작가의 후원자 역할도 자처한 컬렉터들은 17세기까지 급증하며 동양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8세기에 이어 19세기, 20세기 전반까지 이어진 식민지 점령, 제국주의는 컬렉션과도 밀접하게 연관됐고 미술품 수집은 곧 식민지에서 들여온 미술품에 대한 관심으로 확산됐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독일 베를린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 등은 상당히 교육적인 컬렉션의 개념에 가까웠다.
 
시대가 지나갈수록 기업의 컬렉션도 더욱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대형 컬렉터는 때때로 자극적인 언론에 노출되며 예술적 가치가 자본주의에 잠식되는 세태에 대한 우려를 낳기도 한다. 기업의 재단과 미술관, 갤러리를 통해 작품에 가치의 세례가 내려지고, 고가미술품의 과도한 매입, 짧은 시간 매매를 통해 투기가 진행되는 과정은 때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업과 같이 대형자본을 보유한 이들의 예술 후원이 없었다면 시대를 꽃피운 르네상스시대의 걸작도, 현재의 피렌체도 존재할 수 없었음이 자명하다.
 
직접적인 생활의 활로가 되어주고 때론 예술가와 대중을 잇는 가교가 되기도 하는 기업의 컬렉션. 자본주의시대에서 양날의 칼과 같은 대형 컬렉터는 또다시 시간을 초월해 관객을 만날 '21세기 다빈치'를 탄생시킬지도 모를 일이다. 걸작과 거장의 뒤에는 늘 이들이 역사에서 빛날 수 있게 해준 컬렉터가 존재했다. 불황의 긴 터널을 지나지 못한 미술시장에 '21세기 메디치가'의 탄생과 역할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 프로필
마이애미·뉴욕·퀼른·워싱턴·런던·도쿄·베이징 등 국내외에서 100여회의 전시를 가졌으며 2011년 청작미술상을 수상했다. 화장품 브랜드 미샤와 한정판 라인 출시, 소녀시대 의상 콜라보레이션 등 갤러리의 문턱을 넘어 문화 전반에서 관객과 만났다. 주요 저서로는 <스물아홉 김지희, 그림처럼 사는>, <스물아홉 김지희, 삶처럼 그린>(2012) 등이 있다.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