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적 시각을 바탕으로 한 '화폐전쟁'은 사실(fact)에 허구(fiction)를 더한 팩션(faction)이지만, 중국에서는 일반인은 물론 지도층 사이에서도 뜨거운 화제가 됐다. G2로 성장한 중국에게 군사력과 함께 미국의 막강파워를 보여주는 금융의 힘은 경이로운 두려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위안화를 달러에 맞먹는 기축통화로 키우겠다는 갈망 역시 미국의 금융공격에 대비한 방어망이다.
◆엔화·파운드화 위협하는 위안화
중국이 지난 2009년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한다고 선언한 지 5년이 흘렀다. 중국정부는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로드맵을 차근차근 밟아나가고 있다. 2010년 홍콩에 위안화와 미국 달러화 간 역외 외환시장을 개설했고, 중국 본토 주식·채권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한도 확대, 세계 각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등이 그것이다. 지난달에는 위안화 환율 하루 변동 폭을 ±1%에서 ±2%로 확대해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는 조치도 시행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위안화의 국제화는 탄력을 받았다는 평가다. 위안화는 현재 세계 화폐순위(결제량 기준)에서 스위스프랑과 함께 7위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고 있지만 성장잠재력이 있는 화폐로 평가받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인 경제위기로 미국 달러화의 가치가 흔들리는 반면 위안화 보유에 대한 욕망이 세계 각지에서 증가하고 있어서다.
중국 인민대학은 최근 발표한 '인민폐 국제화 진행상태 및 전망' 보고서에서 위안화가 2~3년 안에 일본 엔화, 영국 파운드화를 제치고 지급결제 및 가치저장 통화로 활용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위안화의 국제화지수는 1.88로 엔화(4.50), 파운드화(4.19)에 뒤지지만 현재 추세를 고려할 때 2~3년 안에 넘어설 것이라는 것.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54.69), 유로화(24.13)의 국제화지수와 현격한 격차가 있지만 일본의 엔, 영국의 파운드라는 막강한 경쟁자를 위협할 만한 위치에 온 것이다.
중국의 이 같은 분석은 단순한 희망사항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위안화의 위상은 최근 유럽 양대 경제대국인 영국과 독일의 위안화 거래기관 설치경쟁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3월31일(현지시간) 중국 인민은행과 런던에 위안화 청산결제은행 설치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영란은행은 이 합의로 "은행, 기업들이 위안화를 국제결제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국은 위안화 거래 허브경쟁에서 독일에 '유럽 최초' 자리를 빼앗겼다. 영국보다 불과 3일 앞선 3월28일 독일 연방은행이 인민은행과 프랑크푸르트에 청산결제은행을 설립하는 양해각서에 합의한 것.
이처럼 영국과 독일이 위안화 거래경쟁을 벌인 것은 외환보유고가 올해 말이면 4조5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의 천문학적인 자본을 끌어들여 자국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속셈이 있어서다.
위안화 국제화를 통해 정치는 물론 경제에서도 미국과 함께 명실상부한 G2 자리를 굳히려는 중국에게도 유럽 진출은 바라던 일이다. 중국은 해외거래 시 위안화 결제를 역외 외환시장이 설치된 홍콩을 통해 처리하는데 프랑크푸르트, 런던 등 유럽 주요도시에서 위안화 결제거래가 시작되면 위안화의 국제화가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 역시 위안화 허브경쟁에 뛰어들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4월1일 런던에서 열린 '한·영 금융협력 포럼'에서 "한국을 위안화 허브로 만드는 데 성공할 경우 한국의 금융산업이 한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위안화의 국제화 흐름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잘 나가는 위안화에 미국이 견제구를 날렸다. 중국정부가 인위적으로 환율시장에 개입해 위안화 약세(위안화 가치 하락)를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
지난 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미국 재무부 고위 관리는 "미국정부가 위안화 환율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위안화 약세가 중국의 환율정책 기조변화를 의미한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환율에 대한 인위적 개입을 자제하고 시장영향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환율정책을 운용하겠다는 약속을 깰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다. 이는 올 들어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가 2.5% 하락하는 등 위안화 약세(달러화 강세)가 지속되는데 불만을 표출하는 동시에 중국에 환율조작국의 오명까지 씌우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중국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강화되고 수입물가가 올라 중국인들의 외국제품 수요가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하는 만큼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이 인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린다며 위안화 절상을 요구해왔다.
중국은 환율개입 주장에 대해 펄쩍 뛰며 반박했다. 션단양 상무부 대변인은 "2월 중국 무역수지가 예상과 달리 23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며 "이점만 봐도 위안화 절하가 중국정부의 인위적 개입 때문이라는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강 인민은행 부총재도 지난달 한 포럼에서 "앞으로 위안화 환율은 점점 더 시장에 의해 결정될 것이며 환율에 대한 인민은행의 역할은 약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제이콥 루 미국 재무장관은 "위안화 환율이 온전히 시장에서 결정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보인다"고 의혹을 거두지 않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