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의 집안싸움이 대한의사협회장 ‘탄핵’으로 치달았다. 임기를 1년가량 남겨둔 노환규 의협회장이 대의원들의 신임을 잃으며 벌어진 상황이다.

의협 대의원회는 지난 4월19일 열린 임시총회에서 노 회장에 대한 불신임을 안건에 올렸다. 전체 대의원 242명 중 178명이 출석했고, 76.4%인 136명이 불신임에 찬성표를 던졌다. 대의원 136명이 노 회장을 불신임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대의원과의 '세대 갈등'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이 가결되기 위해선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출석,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한다. 조건은 성립됐고 노 회장은 의협 설립 106년 만에 첫 탄핵 회장이 됐다. 의협 대의원을 향해 조준했던 ‘내부개혁’은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정관 및 대의원총회 의결을 위반해 회원의 중대한 권익을 위배’하고 ‘협회 명예를 현저히 훼손’시킨 불신임을 떠안았다.

노 회장과 대의원의 충돌은 예견된 상황이었다. 노 회장은 취임 때부터 대의원과 크고 작은 갈등을 빚어왔다. 이들의 ‘세대 갈등’은 언젠간 타오를 불씨였다.

노 회장은 의협회장으로 당선되기 전인 2009년 전국의사총연합 대표 시절부터 의료사고, 로봇수술, 리베이트 등을 폭로하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언젠가, 누군가 할 일이라면 지금 우리가 하자”면서 의료계의 단결을 강조했다. 이 같은 그의 ‘의료계 개혁’은 공약으로 이어져 젊은 의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가 37번째 의협회장에 선출되기까지의 히스토리다.


이러한 노 회장의 모습은 대의원에게 달가울 리가 없었다. 대의원 상당수가 16개 시·도 의사회장 출신의 중견 원로다. 변화보다는 안정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 끝을 알 수 없는 대의원의 임기는 젊은 의사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노 회장이 지난 2년간 대의원과 마찰만 빚어 온 것은 아니다. 그는 취임 후 1년 동안 갈등이 있었던 대의원과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 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시기상조였던 것일까. 이후 지난 1년간 대정부 투쟁을 선언하고 장전했던 개혁 탄환을 하나씩 발사하면서 대의원과의 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투쟁동력을 확보한 그의 마지막 타깃은 집단휴진이었다. 하지만 집단휴진은 결국 노 회장의 총구를 틀어막았다. 지난 3월 집단휴진 이후 진행된 1차 의정 협의결과는 불수용. 의료계 앞날을 결정할 이슈에 대해 노 회장이 독단적으로 철회와 불수용을 결정한 부분은 대의원의 반감을 키웠다.

결국 노 회장은 탄핵과 함께 의협회관을 떠나게 됐다. 그는 이제 탄핵 효력정지가처분 신청 등 법을 배경삼아 반격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 /사진=뉴스1 한재호 기자
◆‘탄핵’ 놓고 엇갈린 목소리
한쪽에서는 대의원회 개혁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대의원회의 탄핵 결정을 받아들이고 보궐선거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 회장을 지지하는 전국의사총연합과 노 회장의 탄핵을 지지하는 대한평의사회의 상반된 목소리다.

전국의사총연합은 대의원회 개혁을 위해 회원들에게 청원서를 받고 이를 강력하게 밀어붙일 작정이다. 지난 4월21일부터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청원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의협 역사상 첫 탄핵 회장을 만든 대의원회가 이번에는 후폭풍을 맞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전의총은 ▲예외 없는 대의원 직선제 ▲시도의사회 집행부 대의원 겸임 금지 ▲대의원 3연임 제한 ▲직역에 따른 합리적인 대의원 수 재배분 등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전의총은 “4대 개혁안에 대한 호응이 절대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대의원회는 정관 개정에 대한 민초들의 큰 압력을 맞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노 회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대의원회의 불신임 가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또 “재신임을 묻는 온라인 투표 참여 회원 1만6376명 중 92.8%가 탄핵에 반대했다”며 대의원회의 결정에 따를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반면 “노 회장의 탄핵은 회원들의 의견과 다른 결과”라는 일부 주장에 평의사회는 즉각 대응했다. 평의사회는 지난 4월21일 성명서를 통해 “1차 파업투표 때는 유권자 9만710명 중 4만8861명이 참여했고 투표율은 53.87%였다”며 “하지만 불신임 설문조사는 1만6376명만 참여해 투표율이 18%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는 설문조사의 정당성에 거부감을 느끼고 참여를 하지 않은 것”이라며 “일방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는 법적근거도 없고 당사자에 의해 객관성을 상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의사회는 이 같은 해석을 내놓으며 노 회장이 대의원회 결과를 수용할 것을 요구며 보궐선거 진행을 밀어붙이고 있다.

◆노 회장, 법정싸움 예고

노 회장의 탄핵 후 의협 집행부는 즉각 직무대행체제로 전환해 회무를 이어갈 방침이다. 직무대행은 김경수 부회장(부산시의사회장)이 맡았다. 먼저 의협은 보건복지부와 의정합의 이행을 위한 논의를 해야 한다. 5월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수가협상도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혼란이 가시지 않은 의협이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어떤 식으로 해결해 나갈지 의문이다.

의협의 새로운 회장을 선출해야 하는 것도 당면한 과제다. 정관에 따르면 60일 안에 새 회장을 선출하기 위한 보궐선거를 해야 한다. 하지만 노 회장이 탄핵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전운이 감돈다.

보궐선거가 진행되는 도중 탄핵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혼란은 최소화된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후라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노 회장이 의협으로 복귀하면 새로 선출된 회장은 자리를 내줘야 한다.

의협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2012년 3월 변화를 갈망하던 의사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의협회장에 당선된 노 회장. 그는 1년여의 임기를 남기고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의 중심에 섰다. 노 회장이 회장직 되찾기에 나서면 의료계 집안싸움은 법원으로 무대가 옮겨진다. 살얼음판을 걷는 의료계는 이번 혼돈에서 어떻게 빠져 나갈 것인가.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