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 패션 아웃렛 상권 진출
지난 5월1일 서울 가산동에 위치한 한라건설의 ‘하이힐아울렛’이 ‘현대아울렛’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인 현대아울렛이 한라건설과 20년간 위탁운영 계약을 체결하면서 가산디지털단지 패션 아웃렛 상권에 고개를 내민 것.
영업면적 7만9000㎡, 지하 1층 지상 9층 규모인 현대아울렛 가산점에는 현대백화점그룹이 인수한 한섬(타임·마인·SJSJ)과 LF(옛 LG패션) 헤지스,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의 구호, 빈폴, 에잇세컨즈가 들어왔다. 여기에 기존에 없던 노스페이스, 코오롱스포츠, 블랙야크, K2 등 아웃도어를 추가 입점시키면서 가산 아웃렛 상권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하지만 현대아울렛 가산점이 들어서면서 업계의 원성이 쏟아지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첫 아웃렛 도전이 왜 하필이면 중소·중견 아울렛기업들이 15년에 걸쳐 일궈놓은 가산 상권이냐는 불만에서 터져나온 반응이다. 그것도 백화점 및 홈쇼핑사업 등을 통한 오랜 유통사업 노하우를 지닌 대기업이 중소 유통 상권을 노렸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경쟁사인 롯데백화점은 서울역 등 도심과 경기도 파주, 여주 등 수도권 지역에 10여곳의 아웃렛을 운영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교외형 아웃렛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키우고 있다. 유독 현대백화점그룹만 이미 기반이 다져진 가산 상권에서 아웃렛사업을 밀어붙이며 중소·중견기업들을 압박하고 있어 경쟁사들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중소기업 텃밭서 첫 사업 타진
주목해야 할 점은 현대아울렛 가산점 개장이 현대백화점그룹의 첫 아웃렛사업이라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현대백화점그룹이 아웃렛사업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이미 구축돼 있는 상권를 선택했다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최근 주력사업인 백화점의 시장점유율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데다 홈쇼핑의 영업이익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앞서 롯데와 신세계는 경기 침체 속에서 백화점의 성장세가 꺾이자 아웃렛 패션사업을 돌파구로 삼았다. 실제로 지난해 백화점 매출 성장률은 4.9%에 그쳤다. 반면 아울렛은 ‘유통업계의 황금알’로 불린다. 매년 두자릿수의 고성장을 하고 있다. 유통 대기업 입장에서는 아웃렛사업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결국 현대백화점그룹도 지난 5월 현대아울렛 가산점을 위탁운영하기로 하며 뒤늦은 실적 회복에 나섰다. 하지만 경쟁사들에 비해 진출 시기가 늦어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중소·중견 아웃렛기업들이 일궈놓은 상권을 선택하고 사업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웃렛업계 관계자는 “유통업계 대기업인 현대백화점그룹이 중소·중견 아웃렛기업들이 일궈놓은 상권에 들어오면서 매출이 줄었다”며 “대기업과 우리는 애초부터 상대가 될 수 없는 대결이었다”고 토로했다.
◆속수무책인 대기업과의 대결
현대백화점그룹을 등에 업은 현대아울렛 가산점과 인근 중소·중견 아웃렛기업들의 대결은 시작하자마자 현대아울렛 쪽으로 세가 기울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고객이 현대아울렛 가산점에서 10만원·20만원 등의 단위로 상품을 구매할 때마다 가격의 5%에 해당하는 백화점 상품권을 사은품으로 내걸었다. 고객들은 현대백화점 상품권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현대아울렛 가산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기존 아웃렛기업들은 현대백화점그룹의 상품권 마케팅전략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인근 아웃렛의 5~6월 매출은 4월 매출에 비해 5% 정도 더 떨어졌다. 중소·중견 아웃렛들이 현대아울렛의 가산 상권 진출에 거세게 반발하는 이유다.
반면 현대아울렛에 따르면 지난 5월 가산점은 당초 목표보다 15% 상회하는 매출을 올렸다. 당시 현대아울렛 측은 “5월 한달간 매출 목표를 15% 초과한 만큼 연매출 200억원 달성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뒷전에 미뤄둔 대기업의 상생
상품권 마케팅전략 뿐만이 아니다. 지난 4월 서울 목동을 중심으로 현대아울렛 가산점을 소개하는 문구가 담긴 현대백화점 홍보 전단지 30만부가 돌았다. 5월1일 개장 소식을 알리기 위해 현대백화점 고객 데이터를 활용한 사전 마케팅 전략이었다. 백화점 인프라를 활용한 홍보로 덩달아 지역 상권까지 알려지는 계기가 되는 듯 했으나, 이후 눈에 띄는 홍보 마케팅은 없었다.
물론 대기업은 지역 상권을 홍보하고 고객 확대에 나서야 할 책임이 없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측면에서 접근하면 얘기가 다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기존 상권 고객으로부터 매출 상승효과를 누리고 있다. 새롭게 유입된 고객 수는 많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이로 인해 해당 상권의 중소·중견 아웃렛들은 상대적으로 고객 수가 줄어 매출이 감소했다. 이처럼 지역 상권 활성화에 기여하지 않는 현대백화점그룹의 행보 때문에 업계의 한숨이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아울렛을 가산디지털단지에 차려 놓고 지역 상권 활성화 등의 노력 없이 오로지 실적 향상만 꾀하고 있다”며 “이게 바로 대기업이 중소·중견 상권에 밥숟가락만 얹은 격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한탄했다. 이 관계자는 “대기업이 중소·중견기업들의 상권에 들어왔다면 TV나 라디오 광고, 전단지 등을 활용해 상권 전체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를 하면서 함께 커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답답한 심경을 털어놨다.
대기업 횡포 논란으로 치닫고 있는 몇가지 의혹들과 관련해 현대백화점그룹 측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기존에 운영되던 하이힐아울렛을 위탁경영하는 것이고, 이를 대기업의 횡포로 몰아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앞으로 가산디지털단지의 패션 아웃렛 상권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