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구포신'(除舊布新). '묵은 것은 없애고 새 것을 펼치라'는 뜻의 사자성어다. 2년 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른바 '뉴타운 출구전략' 카드를 꺼내면서 생각한 것도 이와 같으리라. 삽 한번 뜨지 못하고 주민과 업체 간 반목하며 불신만 쌓인 채 '시간이 멈춰버린' 서울시 뉴타운을 구원하기 위해 박 시장이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상황은 녹록지 않다. 사업은 지지부진한 국면을 이어가고 있고,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 간 갈등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추진된 지 어언 2년이 훌쩍 지난 뉴타운 출구전략. 말 많고 탈 많던 박원순표 출구전략의 끝은 어떻게 맺어질까. <머니위크>는 '박원순 2기' 출범을 맞아 뉴타운 출구전략을 점검했다. 직접 뉴타운 현장을 찾아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보고 뉴타운의 남은 숙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도 살펴봤다.
고가도로 중간에 설치된 성수역, 가로수보다 낮은 건물에 들어선 상점들과 전·월세 전단이 붙어있는 공인중개업소들, 그리고 고무냄새 가득한 2~3층 규모의 기름때로 얼룩진 영세한 공장들.
성수역 3번 출구로 나와 성수동 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 개발 예정지로 걸어가는 동안 펼쳐진 풍경은 여느 평범한 서민 동네와 다를 게 없다. 고층아파트와 주상복합이 숲을 이루고 초고층 랜드마크 타워와 첨단업무시설이 들어서 '한국의 맨해튼 성수동'이 될 것이라던 지역이 이곳인가 싶을 정도다.
◆ 개발 더딘 '한국의 맨해튼', 기억 저편으로
지난 2일 30도를 오르내리는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 찾은 성수동. 성수역에서 공인중개업소 이곳저곳을 들르며 30분쯤 걸었을까. 왕복 2차선 도로를 끼고 양 옆으로 빽빽이 들어선 낮은 상가와 뒤편의 허름한 주택가가 눈에 띈다. 바로 이곳이 서울숲 동쪽에서 영동대교 북단까지 이어지는 성수지구(성동구 성수동 72 일대, 1·2·3·4지구) 뉴타운이다.
하지만 과연 뉴타운이 들어설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곳은 정적이 흘렀다. 그 어디를 훑어봐도 재개발과 관련된 플래카드 하나 찾을 수 없었고, 좁다란 골목 안에 밀집된 집 사이사이를 1시간여 가까이 누벼 봐도 재개발과 관련된 그 어떤 전단지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일부 주택가는 하얀색 고무호스가 갖가지 형태로 이어진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주민에게 물었더니 상수도시설이 노후돼 몇개월 전부터 이런 방법으로 수돗물을 공급받는다고 했다.
주택 밀집지역에서 왕복 2차로 대로변으로 나오자 위험한 광경이 목격됐다. 대로가 그리 넓지 않은 탓에 인도와 차도 구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부 시민들이 차도를 걸어다니고 그곳을 시내버스와 대형트럭 등의 차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재정비가 시급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을 따라 20여분을 걷다 눈에 띄는 공인중개업소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뉴타운에 대해 물었지만 시큰둥한 대답이 돌아왔다. "뉴타운으로 지정되면 뭐해. 언제 시작될지도 모르는데. 2·3지구는 개발되기 힘들고 그나마 빠른 곳이 1지구니까 그쪽을 가봐. 거기에 (성수 1지구) 추진위원회도 있을 거야."
공인중개소 사장의 말대로 1지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걷다보니 길가에 야장을 펼쳐놓은 '성수 1지구 재개발 이동접수처'가 보였다. 이곳에는 추진위와 관련된 주민 두명만 보일 뿐 한산했다. 이들에게 이곳 분위기를 묻자 그동안 사업진척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뉴타운 개발 분위기가 많이 침체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추진위원회 사무실을 찾았다. 이곳에서 성수동 뉴타운 개발 진척정도와 현황 등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조합원 수(약 1400명)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1구역은 현재 60% 가까이 주민동의를 얻었다. 앞으로 약 10%의 주민동의만 더 얻으면 조합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1구역 추진위는 연내 조합설립을 마치고 내년에 사업인가와 관리처분을 받은 후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1구역 추진위 이근조 위원장은 "1구역은 상대적으로 일반분양이 많아 4개 지구 가운데 사업성이 제일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부주민이 추가 분담금에 대해 오해한 부분이 있지만 개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닌 상황이라 충분한 설명을 통해 이해시켜 최대한 빨리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말한 주민들의 오해란 성수동 뉴타운이 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전체 사업용지 중 4분의 1인 25%(기존 12%)를 공공기여 방식으로 기부채납 해야 하기 때문에 추가 분담금이 늘어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강변북로 지하화 비용(562억원)을 비롯한 기부채납은 조합원이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성에서 떼놓는 것인 만큼 조합원의 부담은 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서울시의 탁상행정에 늦어지는 사업
서울시가 공공관리제도 첫 시범지역으로 선정한 이곳은 뉴타운사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기대됐다. 공공관리제도는 자치구청장이 공공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과정에 참여해 공공관리자로서 조합 임원의 선출 및 시공사 선정 등 사업 각 단계에 개입, 사업진행을 돕는 제도를 말한다.
재개발·재건축 등의 정비사업계획 수립부터 완료까지 관할 구청장이 주민을 대신해 추진위원회의 구성을 지원하고 이를 위한 정비업체를 선정하는 등 사업진행을 시·구 등의 자치단체가 맡아 정비사업 기간의 단축 및 사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주민부담을 낮추자는 취지로 2010년 6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에 따라 도입됐다.
전문가들도 시와 구가 참여해 진행되는 만큼 사업이 빠를 것으로 예상했던 이 사업은 예상외의 복병을 만나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시와 구청의 사업의지에 의해 사업이 진행된다는 점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다. 특히 성수 1지구의 경우 사업이 늦춰진 배경에 서울시의 탁상행정이 꼽힌다.
이곳은 서울시가 지난해 실시한 실태조사가 늦춰지면서 1년이 넘도록 허송세월을 보내야 했다. 시가 현장에 방문하지 않고 탁상행정으로 실태조사를 하면서 주민의 반발을 산 것. 따라서 이곳은 재조사에 들어가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허비됐다.
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대로변은 3.3㎡당 1800만원, 골목길 주변은 3.3㎡당 1200만원으로 책정하다보니 한강변에 있는 신축빌라나 아파트도 3.3㎡당 1200만원으로 책정됐다"며 "현장에 직접 나와서 평가해야 정확한 평가가 나오지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로만 두드리면 어떡하냐"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무엇보다 컴퓨터로 공시지가를 보면서 책정하는 작업도 1년이나 걸렸다. 길어야 한달이면 충분할 것을"이라며 "서울시가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주민은 "얼마 전 지방선거가 있다보니 사업은 더욱 진행 되지 않고 혹시 시장이나 구청장이 바뀌면 또 변화가 있을까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며 "공공관리제도가 아닌 일반 재개발로 사업을 진행했으면 벌써 공사에 들어가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서울시가 공공관리제도 첫 시범지역으로 선정한 성수 뉴타운이 시의 미지근한 사업추진으로 인해 사업진행속도가 늘어지면서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한 주민은 "뉴타운 개발 좋지. 근데 개발하기 전에 속이 문드러져"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