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은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 ‘관료’ 출신이다. 지난 2012년 NH농협금융지주 출범 직후 신충식 당시 농협은행장이 초대 회장을 겸직한 것을 제외하면 세차례 연속 관료 출신이 수장으로 선임됐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안팎의 반응이 과거와 사뭇 다르다. 농협금융지주 회장 선정을 앞두고 “농협을 잘 아는 인물이 회장으로 선임돼야 한다”며 ‘관치금융’에 대한 경계심을 높였던 농협 노조가 내정자 발표 후 잠잠한 것이 이를 대변한다.
이달 말 취임을 앞둔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 내정자에 대한 금융권의 시선은 온화한 봄 날씨처럼 포근하다. ‘힘’ 있는 관료 출신으로 정부와 원활한 소통을 끌어내고 수출입은행장을 지내 은행경영에도 밝은 김 내정자가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산적한 현안을 헤쳐나가기를 농협금융 임직원들은 기대한다.
임종룡 전 회장이 우리금융패키지를 인수해 농협금융의 ‘외형적 확장’에 주춧돌을 놓았다면 김용환 내정자는 내실성장과 혁신의 원년을 이끌어야 한다. 오는 24일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후 농협중앙회 승인, 농협금융 주주총회를 거쳐 이달 말 회장직에 오르면 그 시험이 시작된다.
◆‘소통의 달인’, 임종룡 아성 넘을까
“관료 출신답지 않은 유연함을 지녔다.”, “은행원답지 않은 외향성·적극성을 가졌다.”
김용환 내정자를 두고 금융권에서 평가하는 말들이다. 관료 출신의 외부인사인 김 내정자가 큰 갈등 없이 농협금융에 입성하는 것은 금융위원장으로 옮겨간 전임 회장의 ‘후광’ 덕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전임 회장이 출범 초기 어수선한 NH농협금융의 성장 기틀을 닦고 껄끄러웠던 농협중앙회 및 노조와의 관계도 유연하게 이끌었던 까닭이다.
그런 가운데 김 내정자의 ‘소통 리더십’에 대한 기대도 크다. “직원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현장에 답이 있다는 자세로 뛴 것으로 안다. 따라서 조직의 문제에 헌신적으로 몸을 던질만한 인물로 보고 있다.” 농협금융 관계자가 전한 내부의 분위기다. 수출입은행장 시절 대내외 원활한 소통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일했다는 점이 농협금융의 순조로운 입성을 돕고 있다는 것.
김 내정자는 지난해까지 수출입은행장을 지내면서 신입 직원들이 격주로 행장 집무실을 찾아 어떤 얘기라도 쏟아내도록 독려하고 직접 부서를 찾아가 간식타임을 갖는 등 소통경영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전임 행장이 짧은 기간 외형적 확대를 비롯해 대표 투자상품(올셋)까지 내놓는 등 공격적 행보를 보였기에 김 내정자의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다. 전임 행장을 뛰어넘는 성과를 단기간 보이지 않을 경우 ‘차별화’에 실패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임 회장의 후광은 양날의 칼인 셈.
그래서일까. 정식 취임 전부터 김 내정자는 ‘회장 예습’에 돌입했다. 지난 2일부터 2주간 농협금융 부서장들은 서울 중구 금융연구원으로 ‘장거리 보고’를 다녔다. 김 내정자가 아직 취임 전이라 농협금융이 사무실 등을 지원하지 않아 기존에 머물던 금융연구원(특임연구실 초빙 연구위원)에서 보고를 받았기 때문. 농협금융 관계자는 “지주 업무의 간략한 보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김 내정자가 서둘러 경영 예습에 나선 것은 그만큼 산적한 현안에 대한 해결 의지가 높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당장 발등의 불은 수익성 강화다.
지난해 말 NH농협금융 총자산은 393조원으로 자산규모 기준 국내 3대 금융그룹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7685억원으로 자산규모가 엇비슷한 하나금융(자산 392조원, 당기순이익 9377억원)에 크게 못 미친다.
김 내정자도 이를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다. 김 내정자는 회장 내정 발표 직후부터 “NH농협의 수익성을 끌어올리고 수익기반을 다변화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금융권에서는 김 내정자가 ‘자산운용의 명가(名家)’ 도약에 승부를 걸 것으로 보고 있다. 농협금융의 올해 목표이익은 905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365억원을 더 거둬야 한다.
김 내정자는 다행히 자산운용에 자신감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감독위원회 증권감독과장,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지내면서 자본시장 부문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농협중앙회와의 관계설정도 난해한 숙제다. 농협금융은 그간 농협중앙회를 대주주로 둔 특수한 구조 속에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농협금융은 농협중앙회가 지분을 100% 갖고 있다. 농협법에 의거해 관리·감독은 물론 주요 경영사항을 일일이 승인받아야 한다. 과거 신동규 2대 회장이 최원병 농협중앙회장과 갈등을 빚으며 “농협금융은 제갈공명이 와도 안 된다”는 뼈아픈 어록을 남기고 물러난 이유다. 특히 올 연말에는 중앙회장 선거가 예정된 탓에 어느 때보다 정치금융의 파고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농협금융의 낮은 수익성도 이와 무관치 않다. 농협중앙회는 명칭사용료(NH브랜드)라는 명목으로 매년 수천억원을 농협금융으로부터 거둬간다. 2013년과 2014년에는 각각 4535억원, 3315억원을 농협중앙회에 지불했다. 무려 연간 수익의 절반가량이 명칭사용료로 나간 셈이다.
김 내정자는 이러한 특수성을 걸림돌이 아닌 ‘시너지의 원천’으로 삼는 역발상적 전략을 구사할 예정이다. 농협중앙회와의 원만한 관계 유지 및 협력 강화를 수익성 개선 및 시너지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시각이다.
김 내정자의 ‘추진력’은 업계에서도 익히 소문이 나 있다. 1952년생(만 62세)으로 서울고와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후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관료의 길로 들어서 재정경제부 과장, 금융감독위원회 공보관 등을 거쳤다.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2국장과 증선위 상임위원 시절에는 생명보험사 상장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했고 금감원 수석부원장을 맡았을 때는 이해관계자가 첨예하게 갈리는 기업구조조정을 주도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김 내정자는 과거 칼럼을 통해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 위왕의 예를 들며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충실히 귀를 기울여 잘못을 하나하나 바로잡아 나가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거대금융 공룡이지만 특수구조에 발목 잡힌 농협금융. “쓴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김 내정자가 농협금융의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갈지 자못 궁금하다.
▲19921952년생 충남 보령 ▲1980년 제23회 행정고시 합격 ▲2004년 금융감독위원회 공보관 ▲2005년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2국 국장 ▲2007년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2008년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2008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2011~2014년 한국수출입은행 ▲2015년3월 NH농협금융지주 회장 내정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