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3개월째. 한국의 문화가 40년 넘게 몸에 밴 탓에 아직 미국의 문화는 낯선 것 투성이다. 시차 적응은 끝났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일들이 미국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 일기예보에 따라 움직이는 나라

처음으로 체감했던 한국과 미국의 이질감은 일기예보가 생활에서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날씨예보에 따라 미국인들의 일상생활이 결정된다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다.

"내일은 오후 3시부터 강한 눈보라가 예상됩니다. 초등학교는 12시40분,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12시에 수업이 끝나니 자녀들 마중 시간을 조정해 주십시오."

지난 3월 말 교육청에서 걸려온 전화 내용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내일 정말 눈이 올까. 눈이 온다고 학교를 일찍 끝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부터 날씨는 흐렸고 오후에는 세찬 눈보라가 몰아쳤다. 학교가 일찍 끝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학부형은 자녀를 마중하기 위해 눈보라를 뚫고 운전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재미 한인변호사는 “만약에 학교로 자녀를 데리러 가는 과정에서 자동차 사고가 났다면 틀림없이 교육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을 것”이라며 “이미 일기예보가 나왔기 때문에 교육청이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라면 과연 어땠을까. 일기예보 때문에 미리 조기수업을 통보한다면 교육청은 상당한 항의에 시달렸을 듯 하다. ‘눈 온다고 학교를 일찍 파하는 게 말이 되느냐’부터 ‘맞벌이부부는 어떻게 하라고 일찍 끝내느냐’는 등 항의 이유도 각양각색일테다.

물론 이 가운데는 ‘일기예보가 얼마나 정확하다고 그 말을 믿느냐’는 항의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는 꼭 가야한다’거나 우수상은 받지 못하더라도 ‘6년 개근상’은 꼭 받아야 한다고 믿는 대다수 한국 학부모 입장에서는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결정이다.

하지만 시간대별로 발표되는 미국의 일기예보는 너무나도 정확하다. 대다수 미국인은 일기예보를 신뢰하고 따른다. 지난 2월 미국 북동부지역에 폭설예보가 발효되자 코스트코를 비롯한 마트들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물을 비롯한 생필품을 장만하려는 이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뉴스 역시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날씨를 많이 다룬다. 보도전문 채널의 경우 30분 단위로 일기예보를 전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무더위나 강추위 같은 날씨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미국에서는 순응해야 하는 대상으로 배운다”며 “한국에서 안전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도 어릴 때부터 익숙해진 이런 문화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현지에서 만난 한 재미교포의 분석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 한주에 경제지표 20~30개 발표

또 한가지 적응이 필요한 부분은 바로 경제지표들이 너무 많이, 너무 자주 나온다는 점이다. 뉴욕증시를 비롯해 정부 정책도 경제지표들을 바탕으로 수립되거나 수정된다. 한마디로 통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얘기다.

미국의 경우 한주에 발표되는 경제지표가 20~30개에 이른다. 매달 100개 이상의 경제지표가 정부 기구와 민간 연구기관 등에서 쏟아져 나온다.

월별 자동차 판매실적을 시작으로 모기지 신청건수와 제조업지수, 원유 재고량, 실업수당 청구건수, 실업률 통계,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 등 제조업과 서비스업, 건설업 등 전 분야를 아우른다.

증시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 같은 정보는 종목을 고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특히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등 업계 동향은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 기관에서도 함께 발표하기 때문에 서로 비교해 볼 수도 있다.

미국 역시 발표되는 각종 통계지표들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통계는 특성상 조사대상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예컨데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는 A부문이 제조업 지수 통계에서 빠져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지수 자체는 좋게 나올 수 있지만 A부문 종사자 입장에서는 엉터리 통계가 되는 식이다.

때로는 서로 엇갈리게 나오는 지표 때문에 혼란을 겪기도 한다. 미국 정부가 발표한 서비스업지수는 양호하게 나왔지만 민간기관의 조사결과는 반대로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제지표가 너무 자주 발표되면서 겪는 부작용도 물론 있다. 매주 발표되는 실업수당의 경우 한주는 고용상태가 양호하게 나왔지만 바로 다음주는 나쁘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고용사정이 불과 일주일 만에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들은 경기가 좋아지고 있는 것인지 나빠지고 있는 것인지 해석이 쉽지 않다.

한국의 경우 대부분 경제지표는 통계청과 한국은행에서 내놓는다. 정부가 발표를 하기 때문에 그만큼 통계지표의 신뢰도는 높다. 대신 비교해 볼 수 있는 다른 지표가 없다는 점에서 다양성은 떨어진다.

과거 삼성경제연구소나 LG경제연구소 등 민간연구소들이 경제성장률 전망 등을 내놓았지만 지금은 외부에는 공개하지 않고 ‘내부용’으로 쓰임새가 제한됐다. 정부 전망치와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나타나면서 시장에 혼란을 초래한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예상보다 민간연구소의 전망이 더 맞아 떨어지면서 비판이 제기된 것이 보다 직접적인 이유라는 주장도 나온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비록 다르더라도 자신이 취사선택할 수 있는 지표가 더 많은 편이 없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지표 해석도 투자자의 몫이고 투자 결정의 책임 역시 본인이 감당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일기예보도 과거의 기록이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는 점에 통계의 속성을 지닌다. 미국이 통계에 따라 움직이는 나라라는 데 수긍이 가는 이유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