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기면서 가장 가까운 사이임에도 아쉬운 얘기를 쉽게 꺼내놓기 힘들었다. 그저 우리 애를 봐 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 죄송스러운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온종일 TV를 틀어놓고 있다던가, 그동안 아이에게 주지 않던 과자를 먹여도 불평불만은 그저 속으로만 삭이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아이에게 라면을 먹였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불끈 화가 났다. 밀가루 제품도 줄지 말지인데 인스턴트 식품이라니….
사실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는 게 영 마뜩치는 않았다. '육아선배'들에게서도 익히 들었던 육아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어쩌다가 조심스럽게 요구사항을 얘기하면 "너희도 다 이렇게 키웠다"는 답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동안 나는 육아를 전문가가 쓴 책으로 배웠다면, 부모님 세대는 체득해서 아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육아 전문가들이 책을 통해 일러준 대로라면 할머니가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다.
단적인 예가 신생아 젖 짜기다. 지금은 20개월에 접어든 아이가 신생아 시절,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는 아이 젖을 짜주어야 한다며 아이 젖꼭지를 억지로 손으로 짜내 나를 기겁하게 한 적이 있었다. 함몰유두를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나는 앞서 육아 책 속에서 절대로 아이 유두를 짜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을 읽었다. 책 내용을 설명하자 엄마와 시어머니는 "예전에는 다 이렇게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런 일이 반복될까 싶어 나는 엄마에게 동사무소에서 운영하는 조부모 육아교실을 넌지시 추천해드렸다. 엄마는 "그런 거 안 들어도 다 안다"는 투로 대했다.
엄마에게 아기를 맡기면서도 불신하는 마음이 커지자 내 말투나 행동도 그런 마음이 담겼었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친언니가 얘기를 해줘서야 알았다.
"네가 엄마한테 하는 게 꼭 일하는 아줌마한테 하는 것 같아. 엄마도 서운해 하는 눈치야."
퇴근하면 엄마는 본체 만체로 내 아이부터 찾기 바빴다. 나를 제외하고 아이와 공유하는 것들을 얘기하는 엄마에게 심술이 나기도 했다. 그런 생각과 마음들이 나도 모르게 엄마를 서운하게 했나 보다. 겉으로는 엄마의 육아방식에 대해 내색할 수 없으니 쌓인 마음이 또 잘못되게 표출됐을 수도 있다.
아이를 부탁하며 드리는 적은 용돈에 '내 할일 다했지'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노동의 대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용돈임에도 엄마는 받으실 때마다 늘 미안해 하셨다.
얼마 전 TV광고가 아른거린다. "자식 농사 끝, 자식의 자식농사 시작." 그 광고를 보고 콧날이 시큰해졌다. 젊은 내가 아이 한명을 키우기도 버거운데 환갑이 넘은 엄마는 내 아이와 오늘도 씨름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여전히 TV를 틀어놓은 채 아이를 보고 있는 엄마를 보면 또 내 성에 차지 않겠지만, 하루종일 손주 보시겠다고 피곤함을 무릅쓴 엄마에게 말이라도 따뜻이 건네 드려야겠다. 엄마가 된 이후에도 내가 마음편히 직장에 나올 수 있었던 게 친정엄마의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해야겠다.
<내 아이를 부탁해>의 저자 임영주 부모교육연구소 대표는 “처음에는 부모님께 어렵게 아이를 맡겼으면서도 나중에는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게 당연하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며 “조부모들도 자신이 옳다는 방식 하에서 최선을 다해 양육하고 있다. 이왕 아이를 맡겼다면 끝까지 믿어드릴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아이에게 조부모에 대한 좋은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임 대표는 “아이에게 제2양육자인 조부모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 줘야 한다”며 “아이가 할머니를 잘 따른다면 할머니도 육아에 보다 자긍심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육을 맡기기에 앞서 양육시간을 정확히 정하고, 양육비도 사전에 정하는 과정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