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에서 조카로…. 두산그룹에 ‘용’이 지고 ‘원’ 시대가 열렸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박정원 ㈜두산 회장에게 그룹 회장 자리를 물려주면서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두산의 '4세 경영'이 개막된 것. 국내 주요 대기업에서 오너 4세가 회장직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형제’에서 ‘장자’로 '4세 경영'
“그룹 회장직을 물려줄 때가 됐다. 차기 이사회 의장으로 박정원 회장을 천거한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지난 2일 열린 ㈜두산 이사회에서 사임의사를 밝히며 이같이 말했다. 박 회장은 회장직 승계를 결정한 배경에 대해 “이사 임기가 끝나는 올해가 그룹 회장직 승계의 적기라 판단했다”며 “몇년간 턴어라운드(실적개선)할 준비를 마쳤고 (박정원 회장에게) 대부분의 업무도 위임했다”고 밝혔다.
그간 두산은 지주사인 ㈜두산의 이사회 의장이 그룹을 통솔했다. 박정원 회장의 의장 선임은 오는 25일 이사회에서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박정원 회장은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고 박두병 초대 회장의 맏손자다. 구한말인 1896년 배오개시장(지금의 종로4가)에 포목상을 열었던 박승직 창업주부터 내려오면 두산가(家)의 4세다.
두산그룹은 그동안 초대 회장의 유지에 따라 ‘형제 경영’과 ‘장자 상속’ 이라는 관행 아래 경영권을 승계했다. 1981년 3세인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을 시작으로 고 박용오 회장, 박용성 두산그룹 전 회장,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순으로 형제들끼리 회장직을 넘겨받았다.
박용만 회장을 끝으로 두산그룹은 ‘용’(容)자 돌림에 마침표를 찍고 ‘원’(原)자 돌림 시대를 열었다. 이번 박정원 회장 승계 이후 두산의 독특한 상속 가풍에 따라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 박진원 전 두산산업차량BG 사장, 박태원 두산건설 사장, 박서원 두산 유통사업부문 면세점 전략담당 전무 순으로 바통을 넘겨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박정원 회장은 유력한 차기 두산그룹 회장으로 거론됐던 인물”이라며 “박용만 회장의 동생인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이 두산그룹과 별개로 사업을 하는 데다 박정원 회장이 그룹 지배구조의 상징인 ㈜두산의 등기임원으로 박용만 회장과 경영 관리를 총괄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앞으로 승계를 이을 인물도 두산건설과 ㈜두산의 회장을 몇년 겸임한 뒤 그룹 회장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며 “30년 넘게 이어온 두산의 승계 전통인 만큼 앞으로도 이러한 구도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두산의 젊은 승부사… 턴어라운드 이뤄낼까
재계는 박정원 회장이 두산그룹의 턴어라운드를 얼마나 빨리 이뤄낼지에 주목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두산그룹 내에서 ‘승부사’로 통한다.
1962년생인 그는 고려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경영학 석사과정(MBA)을 마친 뒤 1985년 두산산업(현 두산 글로넷BU)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며 두산맨으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2007년 ㈜두산 부회장, 2012년 ㈜두산 지주부문 회장을 맡으면서 두산그룹의 주요 인수합병(M&A)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특히 기업 인수합병과 사업 재편 등 두산의 먹거리 마련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이다. 1999년 ㈜두산의 부사장으로 상사 사업을 맡을 당시 그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익사업 위주로 과감히 개편함으로써 취임 이듬해인 2000년 매출액을 30% 이상 끌어올렸다. ㈜두산 지주부문 회장이던 2014년에는 연료전지사업, 2015년엔 면세점사업 진출 등 그룹의 주요 결정 및 사업 추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 했다. 연료전지 사업의 경우 2년 만에 수주 5870여억원을 올리는 등 두산의 신성장동력으로 키워냈다.
그는 인재 발굴에서도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로야구단인 두산베어스의 구단주로서 역량있는 무명 선수를 발굴해 육성하는 이른바 ‘화수분 야구’로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박정원 회장은 그동안 과감하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면서 인재발굴과 육성을 중시하는 경영 철학을 보여왔다”며 “정식으로 취임한 뒤엔 흐트러진 회사 분위기를 다잡고 그룹 체질을 개선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실적개선·구조조정 마무리… 당면 과제 ‘산적’
하지만 그의 앞길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씌워진 왕관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두산그룹 안팎에선 ‘턴어라운드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지난해 그룹 순손실은 1조7000억원에 이른다. 그룹 핵심인 두산중공업을 비롯해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두산엔진 등 주요 계열사들이 모두 글로벌 경기 불황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박 회장은 앞으로 실적개선과 함께 새롭게 도전하는 면세사업을 이끌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최근 진행 중인 두산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그의 몫으로 남았다. 다행히 구조조정의 큰 숙제 중 하나였던 두산인프라코어 공작기계사업부문이 지난 2일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에 매각된 것은 호재다.
큰 폭의 적자를 내면서 위기를 맞은 두산그룹. ‘4세 경영’의 시작점이라는 기대와 ‘위기 탈출’이라는 과제 속에 지휘봉을 넘겨받은 박 회장이 위기를 잘 헤쳐 나갈지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62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보스턴대학교 MBA ▲두산산업㈜ 사원 입사▲일본 기린맥주 과장 ▲동양맥주 과장 ▲동양맥주㈜ 이사 ▲오비맥주㈜ 상무 ▲㈜두산 관리본부 전무 ▲㈜두산 상사BG 대표이사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두산건설 부회장 ▲두산건설 회장 ▲두산베어스 구단주 ▲㈜두산 지주부문 회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