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6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베이징시는 1~6환으로 구역이 나뉜다. 이중 1환은 자금성 성벽 안쪽을 말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는 '황제의 영역'이 1환이다.
그렇다면 베이징의 다음 노른자위 2환은 어떨까. 2환은 정확하게 베이징 지하철 2호선 순환선과 맞물린다. 자금성 천안문에서 정남쪽으로 1km 떨어진 첸먼역을 출발해 서쪽 푸싱먼역, 북쪽 구로우다제역, 동쪽 차오양먼역을 지나 다시 첸먼역으로 돌아오는 4각형 순환선의 안쪽이 바로 2환이다. 지금은 허물어진 자금성 외성의 안쪽이 2환인 것이다. 2환 어디에서나 자금성을 충분히 걸어서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서울로 치면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북촌과 서촌이 바로 베이징 2환인 것이다. 6200만㎡ 넓이의 2환은 이미 상당 부분 개발이 이뤄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후통(골목길)으로 불리는 외성의 흔적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 2환 후통의 낡은 주택들은 베이징 부동산시장의 고공행진 사례에 자주 등장한다. 사고 싶어도 매물이 없고 매물이 나오더라도 엄청난 경쟁으로 천정부지 치솟는 것이 2환 후통 부동산이다. 한때 서울 북촌 일대 한옥 투자 열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 2환의 부동산은 부동산 외적 재료와 맞물릴 때 그 가치의 파괴력이 배가된다. 낡은 2환은 기다리고 있으면 개발이 안될 수가 없다. 그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을 현재의 재료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돈방석 앉는 '골목길 투자'
천안문 서쪽 시청구 원창후통의 낡은 주택들을 보자. 뛰어난 학군(외적 호재)과 맞물려 있는 이곳 주택은 ㎡당 40만위안(7200만원)을 호가한다. 3.3㎡에 2억3000만원을 넘는 가격이다. 그래도 부르는 게 값이고 찾는 사람이 줄을 섰다.
최근에는 베이징시 국토자원국이 입찰 방식으로 2환인 시청구 동광후통 99㎡ 토지를 매각해 눈길을 끈다. 낙찰금액은 303만위안(5억4600만원). ㎡당 3만600위안(551만원), 3.3㎡당 10만900위안(1818만원) 꼴이다. 이 정도면 얌전한 가격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모든 토지가 정부 소유로 이 토지는 건물 사용권을 포함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이 토지가 부동산으로서 진정한 매력을 발휘하려면 이와 별도로 건물 사용권도 사들여야 한다. 이 토지의 건물 사용권 거래금액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소 10억원을 웃돌 것이라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기본적으로 베이징의 건물 사용권은 토지 사용권의 2배를 넘는다. 그나마 이곳의 건물은 낡은 사합원 주택으로 실용성이 현격히 떨어진다. 사실상 건물은 껍데기고 그 안의 권리만 사고 파는 것인데도 10억원을 줘야 한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 일대 부동산은 절대 이 가격에 거래할 수 없다며 되레 싼 값이라고 말한다. 이곳은 미래의 개발 유망지로 인근 주택들은 3.3㎡당 60만위안(1억800만원)을 호가한다.
2환 후통의 낡은 주택들이 주목받은 것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최근까지 베이징 국토자원국이 거래한 토지는 220건, 면적으로는 5만㎡에 달한다. 이중 90% 정도가 후통 소재 부동산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찌감치 후통 투자에 눈을 뜬 사람들은 돈 방석에 앉았다. 2007년 3월 베이징시 국토자원국이 처음으로 입찰한 후통 부동산은 자금성 서북쪽 북해공원과 맞닿은 다쒸주오후통 3호였다. 당시 거래금액은 ㎡당 1978위안으로 3.3㎡당 6527위안(118만원)이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싼 가격이다. 북해공원 인근 부동산 가치를 감안할 때 이 일대 부동산은 3.3㎡당 최소 100만위안(1억8000만원)은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렇다보니 베이징의 후통 부동산 경매는 낙찰가가 매번 수직 상승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만 해도 ㎡당 낙찰가가 1만위안을 넘지 않았지만 올 들어 1만위안을 넘기는 사례가 대부분”이라며 “동광후통 1호의 낙찰가가 역대 최고가”라고 밝혔다.
후통 투자는 그러나 절차도 복잡하고 추가 금액이 많이 드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토지 외에 부속 주택을 사전에 미리 구입해야 하며 주택이 너무 낡아 개조나 재건축을 원할 경우 관련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단순 개조를 하려 해도 시 정부와 국토국, 임업국 등에서 인허가가 필요한데 이 수속에만 18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후통 부동산 투자와 인허가, 설계, 건축, 인테리어 등을 한데 묶어 대행하는 전문업체들이 성행할 정도다. 이들 업체들은 부동산 거래금액의 10%를 수수료로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사회 접대용 '회의소'로 각광
그렇다면 누가, 어떤 목적으로 후통의 이 낡은 주택에 투자하는 것일까. 앞선 동광후통 1호의 경우 차 한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길에 있고, 주차도 당연히 불편하다. 그렇다고 풍광이 눈에 띄게 좋은 곳도 아니고 대규모 개발이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앞서 말한 극도의 희소성과 외부 재료가 투자를 마다 않는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후통의 낡은 주택은 바로 개인 회의소(私人會所)를 짓기에 더없이 좋다고 강조한다. 개인 회의소는 중국 특유의 접대·회식 문화와 연관이 있는데 후통의 낡은 주택을 사들여 이를 개조해 ‘멤버십 클럽’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극소수만이 은밀하고 조용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개인 회의소다.
여기에는 또 다른 풍선효과도 작용했다. 2013년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반부패 강화로 공무원들은 운신의 폭이 크게 줄었다. 시진핑 정부는 공무원들의 형식주의와 관료주의, 향락주의, 사치풍조를 4대 악풍으로 규정하고 단속의 고삐를 죄는 한편 공무 접대비와 해외 출장비, 관용차 운영비인 일명 3공 경비를 매년 10% 이상 줄이고 있다. 지난해 3공 경비 예산은 63억1600만위안으로 전년대비 11.7% 감소했다.
2013년 7월부터는 각 지방정부가 베이징에 만드는 연락사무소, 일명 주징빤의 신축이나 개조도 전면 금지하고 있다. 한 때 고층 건물을 통째로 빌려 호텔과 호화식당을 갖춰 놓고 접대를 하던 곳이 바로 주징빤이다. 이듬해에는 베이징의 유명 공원에서 운영하던 공공 회의소 24곳도 모두 폐쇄했다.
하지만 이런다고 중국 공무원들의 접대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공무원들은 단속을 피해 극소수에게만 개방하는 개인 회의소를 선호하게 되고, 허름한 후통의 사합원은 독특한 구조와 특유의 정감으로 이런 회의소를 차리기에 최적이라는 평이다. 정치·금융 밀집지역인 창안대로나 금융가의 뒷골목으로 돌아들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면서도 폐쇄적인 최신식 사합원들이 눈에 띈다. 열에 여덟은 기업가들의 주말용 별장이거나 개인 회의소일 가능성이 높다. 후통의 부동산은 지금도 변주를 거듭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