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쥐불놀이. /사진=뉴시스 DB
새해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쥐불놀이. /사진=뉴시스 DB
한국은 어떻게 식민지배와 6·25전쟁으로 인한 자산파괴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과 민주화를 달성했을까. 삼성전자는 어떻게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세계 1위가 됐고 방탄소년단은 어떻게 빌보드차트 1위에 올라 K-Pop 열풍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을까.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당연시됐던 일이 기적처럼 현실이 되는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 ‘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에선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우리의 인문학적 바탕을 찾아본다. -편집자-

2월4일은 봄이 들어선다는 입춘이다. 통상 새해는 입춘부터 시작한다고 여겼다. 사주명리에서 중시하는 ‘만세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황금돼지해인 기해년 설(음력 1월1일)은 입춘보다 하루 뒤인 2월5일이다. 입춘이 됐으니 새해가 벌써 시작됐지만 사람이 계산하는 날짜로는 하루가 늦어진 셈이다. 이를 두고 옛날에는 음력이 비과학적이기 때문이라며 근거 없는 폄훼를 일삼았다. 하지만 이는 둥그런 원의 한바퀴는 360도이고 해가 한바퀴 도는 공전주기는 365일과 4분의1이며 달의 공전주기는 354일(348일+6일)이란 사실을 바탕으로 달력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시차조정일 뿐 비과학적인 게 아니다.
◆설을 못 쇠게 총칼 들이댔던 일제

우리는 흔히 입춘·우수로 시작해 소한·대한으로 끝나는 24절기가 음력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24절기는 태양의 이동에 따른 해의 위치에 맞춘 태양력 현상이다.


다만 구체적인 계절의 느낌, 1년 가운데 가장 춥다는 소한이 해마다 약간씩 다른 것은 달의 위치변화에 따라 조정된 것으로 꼭 정확하지 않더라도 무리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달의 크기와 위치에 따른 조수간만 차이나 농사의 때를 아는 것도 태양력보다는 태음력이 훨씬 유용하다.

우리 조상들이 아주 오래전 만들어 사용한 태양태음력은 하늘과 땅의 운행질서와 사람이 느끼는 계절변화를 가장 조화롭게 구성해 만든 달력(冊曆)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일제는 1894년 갑오왜란을 일으켜 멸량척왜(滅洋斥倭·외세를 몰아내고 왜적을 배척한다)의 기치를 내건 동학농민군을 무참하게 내몬 뒤 양력을 강제했다. 5000년 가까이 자연스럽게 써오던 태양태음력을 하루아침에 없애고 우리 체질에 맞지 않는 태양력만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백성들은 이와 함께 시행한 단발령에 대해 “머리 깎는 것 자체는 받아들일 수 있으나 일본 놈들이 강제로 깎으라고 하는 것에는 따를 수 없다”며 반대했듯 농사철 조수간만 등에 대해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하는 태양력도 쓰지 않았다.

특히 일제는 강점기 때 우리 고유의 설을 쇠지 못하도록 했다. 오로지 양력 1월1일만을 신정이라는 이름으로 쇠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우리민족은 51년 동안의 장기항일투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했고 끝내 설도 지켰다.

박정희 시대 때 ‘가정의례준칙’을 만들어 설을 없애고 신정만 쇠라고 했지만 이 또한 민심이 어디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정책이었다.

◆정월대보름과 한가위 보름달

한 해가 시작되는 설날에는 온 가족이 모여 떡국을 먹고 조상께 차례를 지낸 뒤 어른들께 세배를 드린다. 세배가 끝나면 윷판을 벌여 단군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놀이에서 삶의 지혜를 깨달았다.

설은 대개 정월대보름 명절로 이어졌다. 1년 중 첫 보름달이 떠오르는 정월대보름. 이날은 본격적인 농사철을 앞두고 논둑에 불을 놓아 기생하는 병해충들을 태워 죽이는 쥐불놀이를 한다. 한 달 쯤 지나면 본격화될 농사철에 대비해 큰 잔치를 벌여 힘을 비축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처럼 달과 보름달에 대한 동양과 서양, 아니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감정이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다. 농경문화에서의 보름달은 이태백이 술 마시며 놀고, 한가위 달집 태우며 환호하다가 초승달 보고 떠나간 님 애틋하게 그리는 정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유목문화에서는 다르다. 달, 특히 밤을 환하게 밝히는 보름달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늑대가 나타나 힘들여 키운 양의 목을 물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으로 멀어지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공포의 광경은 서양에서 흡혈귀 전설을 낳았다. 농경문화에 이 같은 전설이 없는 것과 대조적이다.

농경문화와 유목문화는 현대 호텔문화에 교묘하게 배어들었다. 호텔의 침대를 감싼 것은 하얀 홑이불이다. 이것은 유목문화인들이 농경문화인들이 누리는 하얗고 따듯한 솜이불을 동경해서 만든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호텔방에는 바깥에서 신고 다니던 신발을 그냥 신은 채로 들어간다. 신발을 침실까지 신고 들어가는 것은 농경문화에서는 경을 칠 노릇이다. 이는 유목문화의 유산이다.

◆존중과 관용의 자세

저녁이 있는 삶은 농경문화에서는 필수적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밥을 짓고 가축의 먹이를 주면서 그날 하루에 감사하며 다음날을 준비한다.

전기가 없던 시절이라 해가 완전히 넘어가면 곧 사람들도 잠자리에 들어 농사일로 피곤해진 몸을 잠으로 달랜다. 새벽에 해가 뜨기 전에 몸부터 일어나 아침을 짓고 농사채비를 갖춘다.

하지만 유목문화에서 저녁은 새로운 전쟁의 시간이었다. 해가 환하게 뜬 동안은 늑대의 공격을 쉽게 막아낼 수 있지만 캄캄한 밤에는 늑대가 어디서 공격해올지 모르기 때문에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

요즘은 농경문화와 유목문화가 뒤섞여 있기 때문에 두 문화를 구분 짓기 불가능하고 굳이 나눌 필요도 없다.

다만 문화원류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에서 자문화 우월주의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지평을 넓일 수 있다. 세계에 통할 문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내 것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것도 잘 알아야 한다. 내 것과 다르다고 틀린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르니 존중하는 게 관용이고 그것이 바로 창조의 토대다.

☞ 본 기사는 <머니S> 설합본호(제577호·57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