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식 저축은행중앙회장. /사진=저축은행중앙회
박재식 저축은행중앙회장. /사진=저축은행중앙회

역대 최고 흥행이었지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전국 79개 저축은행은 업계 입장을 대변하는 저축은행중앙회의 신임 회장으로 박재식 전 한국증권금융 사장을 선택했다.
관(官) 출신과 민(民) 출신이 최종 양자대결을 펼쳤지만 중앙회 회원사들(전국 저축은행)의 선택은 ‘관’이었다. 민 출신이었던 전임 이순우 회장이 디지털 강화, 연계영업 등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였음에도 각종 규제에 제목소리를 내지 못했다고 본 저축은행들이 당국과의 소통 능력이 필요한 때라고 판단한 것이다.

박 신임 회장도 이에 응했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예금보험료 인하’를 향한 행보를 보였다. 예보료 인하는 저축은행 부실사태 이후 풀지 못한 업계의 숙원 과제다. 박 회장이 이를 제1과제로 삼은 건 단순히 규제 완화 차원을 넘어 ‘저축은행 업권에 대한 당국의 이미지 개선’이라는 상징성을 따오겠다는 의지여서 업계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크다.


◆"예보료 인하" 취임 일성

‘예보료 인하’. 박 회장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그는 지난 1월21일 당선 직후 기자들과 만나 “시중은행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예보료 인하를 가장 먼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중앙회 내부 직원에게 보낸 첫 메시지인 취임사에서도 예보료 인하를 ‘중앙회 경영목표’의 최우선으로 뒀다. “단기적으로는 금융당국 등과 협의해 저축은행 관련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토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업계의 현행 예보료 수준은 불합리하며 이를 단기에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예보료는 금융회사가 고객의 예금액 가운데 일정 비율(예보료율)만큼 예금보험공사(예보)에 내는 보험료다. 원리금 5000만원까지 보장하는 예금자 보호를 위한 장치다. 저축은행의 예보료율(0.4%)은 다른 금융업권에 비해 최대 5배나 높다. 은행은 0.08%, 보험·증권이 0.15%다. 저축은행은 과거 저축은행 부실사태 여파 이후 2011년부터 높은 수준을 유지 중이다.

저축은행업계는 전임 ‘이순우 체제’에서 예보료 인하 요구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부실사태 이후 건전성이 상당부분 좋아졌고 업권 이미지 개선 노력도 병행 중이며 무엇보다 문제를 일으킨 저축은행, 즉 지금은 사라진 곳들로 인해 현재 열심히 하는 회사가 그만한 규제를 받는 건 과도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부실사태 당시 30개 저축은행이 파산하면서 국민 혈세 27조1000억원이 투입됐고 저축은행 후순위채 피해자가 2만4000명, 피해액만 8710억원에 이르는 ‘주홍글씨’의 무게가 큰 탓에 업계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저축은행업계에 예보료율이 가장 강력한 규제로 꼽히는 배경이다.


당선 직후 박 회장의 ‘예보료 인하’를 위한 행보가 주목되는 건 단순히 규제 완화 차원이 아니다. 업계의 ‘주홍글씨’를 한꺼풀씩 벗겨내겠다는 의지여서다. 예보료는 해당 금융회사에 대한 당국의 신뢰도다. 금융권 관계자는 “저축은행이 시중은행보다 5배 높은 예보료율을 적용받는 건 당국이 저축은행을 시중은행보다 5배 위험하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단계적으로나마 저축은행의 예보료 인하가 현실화되면 저축은행을 바라보는 당국의 시각이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 은행 수준의 대손충당금 적립 규제 완화 등 업계가 박 회장에 요구하는 과제가 많음에도 예보료 인하가 다른 과제들의 충분조건인 셈이다. 예대마진의 단순한 수익구조를 벗어나 수익 포트폴리오 확대를 위해선 규제 완화가 필수인 만큼 예보료 인하 시 적잖은 규제들이 차례로 풀릴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부실사태 이후 업계가 광고, 홍보 등을 통해 이미지 개선 노력을 꾸준히 해온 결과 업권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각이 분명 예전보단 나아졌다”며 “그럼에도 가장 좋은 홍보효과는 업권에 대한 당국의 이미지 개선이다. 예보료 인하가 그 상징”이라고 말했다.

◆예보 “부실사태 기금 회수 못해”

결국 박 회장의 중앙회장직 성공여부가 ‘예보료 인하’에 달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완강한 당국의 기조를 바꾸는 것만으로 ‘관 출신’으로서 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 “박 회장이 임기 내 예보료 인하만 이끈다면 다른 어떤 성과를 안 내도 무방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반면 실패 시 과거 ‘낙하산’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선거에선 7명이 중앙회장에 도전하는 등 역대 최다 지원자가 몰렸다. 당국도 선거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윗선’의 개입 없는 첫 선거라고 평가받는다. 이런 와중에 업계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전임 낙하산들보다 더 큰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취임 일성으로 볼 때 박 회장은 자신감에 찬 상태로 보인다. 박 회장의 무기는 그의 경력에서 비롯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25기)의 행시 1년 후배인 박 회장(26기)은 위성백 예보 사장(32기)보다 6년 선배다. 최 위원장과는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2년간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으며 기획재정부 국고국장을 지낸 후엔 위 사장에게 그 자리를 물려준 바 있다.

그러나 박 회장이 제시한 첫 과제가 쉽게 풀릴지는 미지수다. 예보가 저축은행의 예보료 인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어서다. 부실사태 때 투입된 예보기금 27조원 중 15조원을 아직 회수하지 못했다는 논리다.

박 회장의 3년 임기가 ‘예보료 인하’와 함께 시작됐다.

☞프로필
▲1958년 출생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1982년 행정고시 합격 ▲2001년 재정경제부 보험제도과, 국제기구과 과장 ▲2005년 대통령 비서실 경제정책비서관실 선임행정관 ▲2007년 주제네바 대표부 공사참사관 ▲2009년 우정사업본부 보험사업단 단장 ▲2011년 기획재정부 국고국 국장 ▲2012년 금융정보분석원장 ▲2012년 한국증권금융대표이사 사장 ▲2019년 제18대 저축은행중앙회장

☞ 본 기사는 <머니S> 설합본호(제577호·제57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