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강단이가(이나영 분)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사진='로맨스는 별책부록'방송화면 캡처 @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강단이가(이나영 분)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사진='로맨스는 별책부록'방송화면 캡처 @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저자도 책 내용도 책 제목도 볼 수 없습니다. 선물인 거죠. 뭘 받을지 모르잖아요. 내 돈으로 내가 샀는데도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는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 이게 프로젝트의 콘셉트입니다"

 

지난 9일 방송된 tvN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강단이(이나영 분)는 '안에 무슨 책이 들었는지 모르게 포장하자'는 신선한 신간 마케팅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포장지로 싼 책'의 존재 여부에 대한 시청자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책이 출시되기 전부터 책의 재미있는 부분만을 만화 혹은 카드뉴스 등의 콘텐츠를 통해 제공하는 마케팅이 성행하는 가운데 책에 대한 정보라고는 오직 ‘장르’만을 알 수 있는 블라인드 프로젝트가 등장했다.

 

바로 연세대 사회공헌 동아리 인액터스(Enactus)가 설립한 ‘설렘자판기’ 프로젝트다. 지난 13일 기자는 직접 '설렘자판기'를 찾아가봤다. 

 

◆모르는 누군가가 준비한 선물… 설렘·낭만 2배

텐바이텐 대학로점에 위치한 '설렘자판기' /사진=강소현 기자
텐바이텐 대학로점에 위치한 '설렘자판기' /사진=강소현 기자


'설렘자판기'를 발견한 것은 대학로의 텐바이텐 매장에서다. 매장 중앙에 배치된 '설렘자판기'는 '자판기'라는 이름과 달리 박스로 포장된 책들이 모두 진열대에 마련돼 있다. 최근 자판기가 텐바이텐 고양 스타필드점으로 이전해서다.


진열대에는 '당신의 일상에 설렘을 더하다'라고 적힌 박스로 포장된 책들이 로맨스·힐링·추리·랜덤 등 4가지 장르로 분류돼 있다.
상자 뒷면에는 책의 장르와 관련해 구성성분을 센스있게 표기해놓았다. /사진=강소현 기자
상자 뒷면에는 책의 장르와 관련해 구성성분을 센스있게 표기해놓았다. /사진=강소현 기자


‘사랑 12g, 러브레터 8g, 해피엔딩 6g, 새드엔딩 4g’. 식품에 표기되는 영양성분과 같이 장르에 따라 구성성분을 개성있게 표기해놓은 박스 디자인이 기자의 시선을 가장 먼저 사로잡았다. 저자, 책 내용, 책 제목 등 아무것도 모르지만 구성성분을 통해 책의 장르를 유추할 수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일부 장르의 책들은 이미 품절된 상태. 추리소설을 찾는 고객에게 직원은 "지금 해당상품은 품절됐다"며 "일주일에 한번씩 입고되니 다음주에 오시라"고 말했다. 이 설렘자판기가 제법 인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스에는 중고책과 함께 책을 선정한 헌책방 사장님의 편지가 들어있다. /사진=강소현 기자
박스에는 중고책과 함께 책을 선정한 헌책방 사장님의 편지가 들어있다. /사진=강소현 기자


드라마와 다른 설렘자판기 프로젝트만의 특별한 점은 그 대상이 신간 작가가 아닌 현재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서 헌책방을 운영중인 소상공인이라는 것이다. 박스 안에는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서 판매중인 중고책이 들어있다.

 

책 가격은 7000원. '중고책인데 7000원은 조금 비싼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박스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한권을 구매했다.

 

기자의 박스에서는 김이설 작가의 소설 '환영'이 나왔다. /사진=강소현 기자
기자의 박스에서는 김이설 작가의 소설 '환영'이 나왔다. /사진=강소현 기자

그리고 박스를 여는 순간 편지 한 장이 눈에 들어오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감사합니다. 수십 년 동안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서 책과 함께해온 헌책방 사장님들이 선택하신 한권의 책과 설렘이 당신을 찾아옵니다."
마치 크리스마스날 산타클로스가 트리 옆에 몰래 두고간 '깜짝 선물' 같아 낭만을 더했다.

 

청계천 헌책방거리의 모습. /사진=강소현 기자
청계천 헌책방거리의 모습. /사진=강소현 기자


◆설렘자판기→헌책방거리… 낭만을 더하다


설렘자판기가 헌책방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과 손을 잡고 작업한 이유는 뭘까. 


인액터스는 지난 2014년부터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살리기 위한 ‘책 it out’ 프로젝트팀을 결성, 캐나다 토론토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Biblio-Mat'가 '랜덤 책 자판기'를 만들어 헌책방을 살렸다는 해외사례를 참고해 설렘자판기를 설립했다.

정혜연 인액터스 책 it out 팀장은 "1950년대 말부터 형성된 청계천 헌책방 거리가 출판업계
의 불황과 대형서점의 독식으로 명맥만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며 "독과점에 밀려나는 소상공인의 문제를 해결하고 헌책방 거리 자체의 가치와 헌책에 잠들어 있는 소중한 지식을 보존하기 위해 해당 프로젝트를 시행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3일 낮 12시, 사람들로 붐비는 헌책방거리의 모습. /사진=강소현 기자
지난 13일 낮 12시, 사람들로 붐비는 헌책방거리의 모습. /사진=강소현 기자

설렘자판기로부터 차량 10분 거리에 위치한 헌책방 거리는 설렘자판기의 영향 때문인지 책방을 둘러보는 사람들로 붐볐다. 

청계천거리에서 '밍크서점'을 운영 중인 A씨는 "설렘자판기로 매출이 많이 늘었다. 책 속에 끼워진 편지를 보고 헌책방 거리를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또 그는 설렘자판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청년들을 언급하며 “4~5년동안 꾸준히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라며 "학생들의 그런 순수한 열정에 감명받았다”고 전했다.

헌책을 판매하는 '밍크서점' /사진=강소현 기자
헌책을 판매하는 '밍크서점' /사진=강소현 기자


A씨는 설렘자판기에 제공하는 책 선정기준이 베스트셀러라고 말했다.


지난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을 매일 있어' 등 일반서점과는 다른 베스트셀러에 의문을 표하자 A씨는 "헌책방 거리에 위치한 서점 모두 각각 다른 베스트셀러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헌책방은 다른 곳이 아닌 이 서점을 찾는 사람만을 위한 책을 가져다 놓는다"며 "이게 대형 중고서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헌책방만의 개성이 주는 매력"이라고 소개했다.


설렘자판기는 단순히 책을 파는 것이 아닌 책 전문가들의 지혜와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헌책방거리를 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


획일적이거나 뻔한 데이트 코스에 지친 당신에게 의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설렘자판기→청계천 헌책방거리' 코스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