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업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한 때 화장품 업계를 주도했던 1세대 로드숍 브랜드들은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반면 주문자개발생산(ODM)과 주문자생산(OEM)에 주력하는 업체들은 거침없는 매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로드숍의 성장을 이끌던 ‘중국몽’(中國夢·중국의 꿈)이 깨지고 소비 트렌드가 달라지면서 화장품 업계 양극화는 갈수록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명동 거리 한 건물에 로드숍 할인 안내문이 붙어있다./사진=머니S @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명동 거리 한 건물에 로드숍 할인 안내문이 붙어있다./사진=머니S @머니S MNB, 식품 외식 유통 · 프랜차이즈 가맹 & 유망 창업 아이템의 모든 것
◆중국몽 끝… 1세대 로드숍의 몰락

화장품 브랜드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는 지난해 연결 기준으로 매출 3455억원, 영업손실 190억원, 당기순손실 117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고 19일 공시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7.4% 감소한 수치이며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모두 적자전환했다.

실적 부진은 예고된 결과다. 중국 관광객 매출 의존도가 높았던 로드숍 브랜드들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위기로 성장세가 꺾이면서 치명타를 입기 시작했다. 중국관광객이 급감하면서 화장품 유통시장은 대기업 산하 H&B 스토어 위주로 재편, 로드숍의 입지 회복은 요원해진 상황이다.

이같은 흐름에 에이블씨엔씨를 포함한 로드숍 업체들은 잇따라 부진한 성적을 내놓고 있다. 또 다른 로드숍 브랜드 토니모리도 지난해 연결기준 50억9000만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 기간 매출은 1809억7500만원으로 12.03% 감소했다.


토니모리는 "협업 제품들의 출시로 마케팅 비용이 일시적으로 증가했다"면서 "중국사업 구조조정의 영향으로 인한 재고자산 처리를 위한 1회성 원가 반영과 자회사인 메가코스 초기 가동에 따른 원가상승, 판관비 증가로 적자규모가 발생됐다"고 설명했다.

한때 국내 3대 뷰티로드숍으로 꼽히던 스킨푸드는 지난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개시를 신청했다. 경영 악화가 주된 원인이다. 이 가운데 가맹점주와 유통점주 등은 본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의존도가 컸던 업계 특성상 별다른 생존법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급격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며 “그동안의 성장 자체가 실제 역량보단 트렌드를 잘 만난 운이 컸던 만큼 로드숍 브랜드들이 재기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올리브영/사진=CJ올리브네트웍스
올리브영/사진=CJ올리브네트웍스
로드숍 브랜드의 침체는 달라진 소비패턴에 발빠르게 대응한 헬스앤뷰티(H&B) 스토어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올리브영, 랄라블라, 롭스 등 여러 브랜드의 화장품을 모아서 파는 편집숍 형태의 H&B 스토어로 소비자가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H&B 스토어의 강점은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한자리에서 비교해보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뷰티 트렌드도 가장 빠르게 반영된다. 자사 제품만 구매할 수 있는 기존 로드숍과 달리 H&B 스토어에서는 맥, 크리니크 등 백화점에서만 볼 수 있던 유명 브랜드와 SNS 이슈 상품, 온라인에서 입소문 난 3CE, 투쿨포스쿨, 블리블리 등 중소기업 브랜드도 진열돼 있다. 브랜드 수만 50~100가지에 달한다.

H&B 스토어 관계자는 “화장품 브랜드는 충성도가 낮아 스킨케어, 색조 등 제품별로 인기 브랜드가 다른 경우가 많다”며 “매월 브랜드를 큐레이팅해 상품을 제안하고 업데이트하며 트렌드에 맞춰 운영하는 것이 H&B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콜마, 코스맥스 '1조원 클럽' 진입

로드숍 브랜드들의 날개가 꺾이고 뷰티 트렌드가 달라지는 사이 코스맥스와 한국콜마 등 주문자개발생산(ODM)·주문자생산(OEM) 업체들의 실적은 고공비행 하고 있다. 두 업체는 지난해 나란히 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한국콜마 로고 CI
한국콜마 로고 CI
한국콜마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이 1조3578억원으로 전년 대비 65.3% 급성장했고 영업이익도 899억원으로 전년 대비 34.3% 증가했다.
한국콜마가 연매출 1조원을 넘긴 것은 사상 처음. 이는 신규 대형 거래처 확보와 CJ헬스케어 인수 등으로 제약사업에서 거둔 호실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코스맥스도 글로벌 최대 화장품 시장인 중국과 미국에서의 실적 향상에 힘입어 1992년 창사 이래 최대 매출실적을 올렸다.

지난해 연결재무제표 기준 매출은 전년보다 42.5% 증가한 1조2579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48.9% 오른 523억원, 당기순이익은 35.7% 상승한 210억원으로 급상승했다. 코스맥스는 상하이와 광저우 이원화 전략 효과로 중국에서 전년 대비 29% 증가한 4776억원(단순합산)의 매출을 올렸다.

두 업체의 성장 비결은 뷰티 트렌드 변화와 중소 브랜드 창업붐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유명브랜드와 입소문 브랜드 등이 모두 공존하는 H&B 스토어가 활성화하면서 ODM·OEM 업체인 두 회사의 주문 물량이 크게 늘었다는 설명이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로드숍 업체의 재기를 가로막고 있는 H&B스토어가 ODM·OEM 업체에는 날개를 달아준 셈”이라며 “경쟁사 제품과 트렌드를 모방하기 보다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입소문 제품들이 당분간 뷰티 시장을 이끌어 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