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마나크리 대표. /사진=박흥순 기자
이원석 마나크리 대표. /사진=박흥순 기자

지난 5월20일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을 중독물질로 분류하고 질병코드를 부여했다. 의학계에서도 이견이 분분했던 게임중독에 질병 낙인을 찍은 셈이다. 게임중독의 질병코드는 ‘6C51’로 ‘다른 삶의 이익이나 일상활동보다 게임을 우선시하거나 악영향에도 12개월 이상 지속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WHO의 권고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과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에 정부는 7월 중 ‘게임 질병코드 협의체’를 구성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당사자인 게임개발자들은 어떤 반응일까. 중소게임개발사 ‘마나크리’의 이원석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게임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


“게임 질병코드 등재는 큰 문제가 아니에요. 폐해가 정말 심각하다면 질병으로 분류될 수 있죠.”

이 대표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무섭게 자신의 의견을 쏟아냈다. 게임을 제작·개발하는 사람으로서 게임이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로 분류되는 것을 인정하기 쉽지 않았을 터. 하지만 의외로 그는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현업 종사자의 격한 반발을 예상한 기자에겐 다소 의외였다. 물론 그도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등재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상실감과 허탈함을 느꼈단다. ‘내가 이러려고 게임을 만들었나’라는 생각도 적지 않았다고.

기자와 이 대표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적을 깰 요량으로 “게임이 우리나라에서 유독 이슈가 되는 이유는 공부만을 강요하는 우리나라의 문화 때문이 아닐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내 이 대표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듯 입을 열었다.


이 대표는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공부만 잘하면 먹고 사는 데 문제없다고 했죠. 하지만 이제 시대가 많이 바뀌었잖아요.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가야만 잘 먹고 잘 사는 건 아니죠”라면서도 “하지만 기성세대는 또 생각이 다르죠. 공부를 방해하는 모든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니까요. 그래서 게임에 ‘문제’라는 프레임을 씌우지 않나 싶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기성세대의 이런 생각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쌓여온 정서를 무시하려는 것도 아니고 지금의 젊은 세대가 나이를 먹어 기성세대가 됐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이런 국민정서를 이용하는 세력에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졌다.

“문제는 기성세대의 이런 마음을 이용하는 일종의 집단이나 세력이 문제라고 봅니다. 이 점을 이용해 이익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 대표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의견차이에서 이익을 보는 집단으로 ‘정치인’을 지목했다. 기성세대의 걱정 어린 시선은 이해하지만 이를 ‘표 장사’에 이용하는 행태를 보여선 안된다는 말과 함께 “포퓰리즘 정치를 해선 안된다”고 꼬집었다.

최근에 그는 게임중독 질병코드와 관련된 게임을 제작 중이다. 게임의 명칭은 ‘질병코드 6C51’.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러 가는 것이 주된 스토리인데 중간중간 등장하는 ‘악의 무리’를 피해야 한다. 이 대표는 “게임질병에 관한 목소리를 내고 싶었습니다”며 “아무래도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다보니 게임으로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택했죠”라고 말했다.

◆게임은 일종의 ‘문화콘텐츠’

그렇다면 현업의 개발자들은 ‘중독 물질’로 규정된 게임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까. 과연 게임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지 궁금했다. 기자는 “그렇다면 게임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나요”라고 물었다.

이 대표는 “게임자체를 두고 좋고 안 좋고를 구분지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같은 게임이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거든요. 이를테면 영화도 마찬가지죠. 영화를 통해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알 수도 있고 사람을 살리는 방법을 알 수도 있어요. 소설도 마찬가지고요. 게임이 이것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우문현답이었다. 이어 이 대표는 ‘게임도 일종의 문화’라는 자신의 생각을 소신 있게 밝혔다.

“게임은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하나의 문화콘텐츠입니다. 사람들이 즐겁고 건전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게임개발자는 꿈과 희망을 주는 직업이지 마약 같은 중독물질을 만드는 직업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 대표는 게임을 하나의 문화로 인정하고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흔히 게임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자 각종 기술을 시연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라 불린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는 게임과 인공지능(AI), 클라우드,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을 적극적으로 융합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게임을 ‘아이들의 놀이’, ‘근절해야 하는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각종 잣대를 들이대는 실정이다.

이에 이 대표는 “제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이겁니다. 게임을 사회악으로 몰고 규제해서 시장과 기술이 사라진다면 게임에서 이어지는 다음 산업·문화는 어떻게 개발할까요. 전부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며 “눈앞의 이익과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넓고 멀리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00호(2019년 7월9~1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