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완용.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완용.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광복절(15일)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민족반역자 '을사오적'에도 이목이 쏠린다.
을사오적(乙巳五賊)은 '을사년의 다섯 도적'이라는 뜻이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합병하는데 결정적인 징검다리가 됐던 '을사조약' 체결에 찬성한 이완용(당시 학부대신), 박제순(외부대신), 이근택(군부대신), 이지용(내부대신), 권중현(농상부대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 1905년 맺어진 을사조약은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으로 귀속시킨 조약이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가 헌병대의 호위를 받고 어전회의에 들어가 대신들에게 조약의 찬성을 강요했고 총 9명의 대신 중 5명이 내용 수정 과정을 거친 뒤 최종 찬성하고 조약문에 서명했다.


을사조약은 대한제국의 외교권 포기, 통감부 설치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대한제국은 사실상 국가로서의 기본권을 상실하게 됐다. 또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으로 취임해 외교와 내정에 모두 간섭하면서 1910년 한일병합의 직접적 계기가 됐다.

이로 인해 을사오적은 '매국노'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이들에 대한 공격이 이어졌다. 나철, 오기호 등의 을사오적암살단은 1907년 권중현과 이지용에게 총격을 시도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이재명은 1909년 명동성당 앞에서 벨기에 황제 추도식에 참석한 이완용을 칼로 찔렀지만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