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천장 시스템에어컨 누수 관련 하자가 발생한 송파구 헬리오시티. /사진=현대산업개발 |
“도저히 못 살겠다. 당장 물어내라.”
최근 새 대형건설사의 브랜드아파트에 입주한 주민들은 예전과 달리 당당하다. 집값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각종 하자에도 쉬쉬하던 분위기는 옛말이다. 문제가 생기면 외부에 적극 알리며 시공사를 압박한다. 그들의 달라진 대처법은 어디서 기인했을까.
◆“게시글 당장 내려주세요”
“우리 아파트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글입니다. 당장 삭제 해주세요.”
“집값 하락하면 당신이 책임질 건가요?”
몇년 전 서울 마포구의 한 신축 아파트단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던 어느 게시물에 달린 댓글이다. 한 입주민이 아파트 하자 관련 불만을 제기하는 글을 올리자 대부분의 다른 입주민은 외부에 알려지기 전에 글을 내리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의 반응은 한결 같다. 아파트의 가치가 떨어지고 집값이 하락할 우려가 있으니 글을 지워 달라고 요청한다.
이 아파트뿐만이 아니다. 대체로 비싼 값을 지불하고 새 아파트에 들어온 입주민들은 공개적으로 아파트 하자가 거론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들은 시공사와 조용히 합의해 하자보수 관련 일이 처리되길 희망한다. 외부에 알려지는 순간 집값이 떨어져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가득한 탓이다.
현재 국토교통부는 아파트 하자 분쟁 조정을 위해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해당 기구에 접수된 하자 분쟁 건수는 ▲2015년 4244건 ▲2016년 3880건 ▲2017년 4087건 ▲2018년 3819건 수준으로 매년 수천건에 달하는 하자관련 민원이 제기된다.
그만큼 전국 아파트 곳곳은 각종 하자로 몸살을 앓지만 그동안은 조용히 해결되길 원하는 입주민이 대부분이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신축 아파트 입주민은 “대형건설사가 지은 아파트라고 해서 절대 완벽하지 않다”며 “하자에 대한 보수 요구는 입주민의 당연한 권리지만 그동안은 너무 집값에만 연연해 쉬쉬 하던 게 사실 이었다”고 말했다.
| 실내 바닥 수평, 지하층 천장 누수 등의 하자가 발생돼 입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한 아크로리버뷰신반포. /사진=김창성 기자 |
하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다르다. 입주민들이 오히려 공개적으로 아파트 하자를 외부에 적극 알리며 시공사를 압박한다. 단지 온라인 커뮤니티나 관공서 민원게시판에 하자 관련 내용을 상세히 올리거나 단지 출입구에 각종 하자 관련 현수막을 걸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시공사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 서울 송파구 소재 대형건설사의 컨소시엄(현대산업개발·삼성물산·현대건설) 1만가구 대단지인 헬리오시티(가락시영 재건축)가 대표적이다. 이 단지 5000여가구에 설치한 천장 시스템에어컨에서 누수가 발생해 시공사가 하자보수를 진행 중이다.
이 단지는 대형건설사가 3곳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시공한 대단지인 데다 입주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시장에서도 주목할 만큼 유명세를 떨친 곳이지만 입주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외부에 해당 사실을 적극 알리며 하자보수와 관련해 단호한 입장을 보인다.
서울 서초구 아크로리버뷰신반포(신반포5차 재건축) 입주민들은 실내 바닥 수평이 맞지 않아 공을 놓으면 굴러가는 등의 하자가 있다며 불편을 호소한다. 또 지하층 천장에서 물이 새고 옥상 바닥에 금이 가는 등의 하자도 있다고 토로한다.
이들은 시공사인 대림산업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단지 정문에 몇 달 째 걸어 놓고 있다. 단지 정문이 차도와 바로 붙어 있어 오가는 이들도 쉽게 이 광경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최근 아파트 하자에 대한 입주민들의 태도는 ‘쉬쉬’하던 과거와 달리 180도 변했다. 단지 가치와 집값이 떨어진다는 우려보다 안전한 삶의 가치에 더 주안점을 두는 분위기가 형성된 탓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건설사의 브랜드아파트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견고한 만큼 하자에 대한 입주민들의 실망감도 크다”며 “국회에서도 공동주택 품질검수제도 시행을 골자로 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발의될 만큼 아파트 하자를 대하는 인식이 변하고 있어 과거처럼 시공사가 배 째라는 식의 안이한 태도를 보이는 건 결국 누워서 침 뱉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