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후 버섯재배를 연구중인 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 사진=LG |
선친인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의 갑작스런 타계로 승계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구 명예회장은 평소 “70세가 되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말을 주변에 했다고 한다.
구 명예회장은 “한번 믿으면 모두 맡겨라”라는 선친의 말에 따라 은퇴한 이상 후진들의 영역을 확실히 지켰다. 대신 충남 천안시 성환에 위치한 연암대학교의 농장에 머물면서 은퇴 이후 버섯연구를 비롯해 자연과 어우러진 취미 활동에 열성을 쏟았다.
구 명예회장의 취미 생활은 교직 생활 때부터 손을 댄 나무가꾸기로 시작해 난, 버섯 연구까지 자연과 벗삼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의 연속이었다.
특히 그는 무엇을 하나 시작해도 단순히 여가로 그치지 않고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갖출 때까지 파고들었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구 명예회장은 스스로 ‘상남(上南)’이라는 아호를 지었다. 문중에서 항렬이 낮지만 나이가 많은 그의 호칭을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상남’은 고향집 앞에 증조부인 만회 구연호 공이 놓은 작은 다리인 ‘상남교’에서 따온 것으로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도랑을 치고 호롱불을 밝혀 붕어나 미꾸라지를 잡던 추억이 깃든 곳이었다.
구 명예회장이 은퇴 후 머물렀던 연암대학교의 농장 내 사무실도 대기업 그룹의 명예회장이 사용하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공사장이나 작은 상가의 사무실로 여겨질 만큼 수수하고 소박한 공간이었다.
구 명예회장은 은퇴 후 모교인 지수초등학교 후배들의 서울 방문을 직접 챙기기도 했다. 떠날 때는 사진을 같이 찍고 선물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또 어린 학생들이 장거리 여행에 지쳐 멀미할 것을 걱정해 직접 멀미약을 챙겨보냈고 이에 학생들이 감사 편지를 보내온 적도 있었다.
구 명예회장은 25년 간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대기업 회장이었지만 은퇴 후 일체의 허례와 허식 없이 간소한 삶을 즐기며 그야말로 ‘자연인’으로서 여생을 보냈다.
LG 관계자는 “은퇴 후에도 현역 시절의 열정과 노력하는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며 “끊임없이 연구하는 자세는 기술개발에 매진했던 경영인의 모습 그대로였고 자연인으로서 제2의 인생 은퇴한 경영자의 모범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