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견본주택. /사진=뉴시스 김선웅 기자
대한민국 전체가 부동산에 미쳐있다. ‘광풍’이란 표현을 이미 넘어섰다. 소문난 강사가 강연하는 부동산 투자 설명회에 엄마 손을 잡고 지방에서 KTX로 상경한 초등학생은 “트럼프보다 돈 많은 부동산 재벌이 되고 싶은데 지금 당장 뭘 해야 하냐”고 질문했다. 직장 동료들끼리 만나도, 가족들이 1년에 한두번 모이는 명절에도, 동네 커피숍에서도, 학부모 모임에도 모두가 부동산 얘기다. “누구는 몇년 만에 몇억원을 벌었네” 하는 말들 뿐이다. 직장생활을 갓 시작한 20대가 수십억원짜리 서울 강남 아파트를 현금으로 사들이고 미성년자가 집 몇채를 소유하고 집을 사고팔아 시세차익을 남기는 이들이 추앙받는다. 하지만 이면에는 높아진 전세금을 감당못해 더 좁고 낡은 집을 찾는 무주택자들이 절반에 달한다. ‘신화’로까지 불리는 부동산 성공담은 언제까지 쓰여질까. 이런 대한민국 부동산을 움직이는 이들은 누구인가.<편집자주>
[머니S리포트-①] 주택자금출처 조사로 드러난 부동산 금수저 민낯
가족 도움 받아 절세 가장한 탈세


돈 한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이를 속되게 ‘백수’(白手)라고 부른다. 숨만 쉬어도 눈치가 보인다는 이들이 수십억원에 달하는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전액 현금으로 샀다면 믿을 수 있을까. 믿기 힘들겠지만 최근 부동산시장에는 이 같은 일들이 만연하다. 직장에 다니면서 착실히 월급을 모아도 수십억원에 달하는 강남 아파트를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고정수입도 없는 이들은 어떻게 불가능을 가능케 했을까.


◆‘엄빠·형제 찬스’ 쓴 부동산 금수저

#1. 미성년자(만 18세) A군은 부모 소유의 자금으로 추정되는 6억원을 부모와 친족 4명(각 1억원)에게 분할 증여받아 전세(보증금 5억원)를 낀 11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사들였다. 국토교통부는 편법·분할 증여가 의심되는 A군의 사례를 국세청에 통보했다.

#2. 무직인 30대 B씨는 차입 관련 증명서류와 이자납부 내역 없이 형제(동생)로부터 7억2000만원을 받아 임대보증금 16억원을 포함해 총 32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샀다. 국토부는 가족 간 금전거래로 편법 증여가 의심된다며 역시 국세청에 조사를 의뢰했다.


#3. 30대 가정주부 C는 남편 D씨의 부모로부터 5억5000만원을 무이자로 차입해 임대보증금 11억원을 포함한 22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본인 소유 자금 없이 매수했다. 국토부는 이 역시 가족 간 금전거래(무이자)로 편법 증여 의심 사례로 판단, 국세청에 통보했다.

#4. 최근 직장을 그만 둔 30대 E씨는 부모가 다른 주택을 담보로 받은 ‘개인사업자대출’ 6억원 전액을 차용증을 쓰고 빌려 26억원 상당의 주택 매수에 사용했다. 국토부는 부모의 대출 용도 외 사용 의심 사례로 판단해 행안부·금융위·금감원에 각각 통보했다.

#5. 소득이 전혀 없는 30대 여성 F씨는 최근 40억원 대 강남의 고급빌라를 취득했다. F씨는 이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구입자금 전액을 증여받았지만 차용증을 쓰고 빌린 것처럼 속여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가 국세청에 적발됐다.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 밀집 지역. /사진=뉴시스 DB
◆난무하는 ‘편법증여’… 강남4구 36%
무직인 이들이 수십억원대의 강남 고급 아파트를 손쉽게 살 수 있던 배경은 분명하다. 차용증을 앞세웠지만 사실상 편법이나 불법으로 이뤄진 증여다. 이를 통해 세금 탈루를 일삼으며 부의 대물림을 이어간다.

국토부는 이를 무질서한 ‘시장 교란 행위’로 판단, 지난해 8월부터 행정안전부, 서울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과 ‘관계기관 합동조사팀’(조사팀)을 꾸려 서울시내 전역의 실거래 신고분을 대상으로 실거래 내용과 매수자가 제출한 자금조달계획서를 전수 조사했다.

그 결과 ▲가족 간 대차 의심, 차입금 과다, 현금 위주 거래 등 정상 자금 조달로 보기 어려운 거래 ▲미성년자 거래 등 편법 증여가 의심되는 거래 ▲허위 신고 등 ‘부동산거래신고법’ 위반이 의심되는 거래 등 총 2228건(전체 2만8140건 대비 약 8%)의 이상거래 사례를 추출했다.

조사팀은 이 중 매매 계약이 완결돼 바로 조사가 가능한 1536건을 우선 조사대상으로 선정해 거래당사자 등에게 매매 계약서, 거래대금 지급 증빙자료, 자금 출처 및 조달 증빙자료, 금융거래확인서 등 소명자료와 의견을 제출받아 약 2개월 간 조사를 진행했다.

우선 조사대상 1536건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강남 178건 ▲서초 132건 ▲송파 162건 ▲강동 78건 등 강남4구가 총 550건으로 전체의 36%를 차지했다. 이어 마포·용산·성동·서대문이 238건(15%)이고 그 외 17개구는 748건(49%)으로 집계됐다.

조사팀은 그동안 특정 지역과 기간을 정해 추진한 합동조사체계를 올해부터 상시조사로 전환하고 대상 지역도 확대해 국지적 시장 과열과 불법행위 발생 시 신속 대응할 방침이다. 특히 지난해 8월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으로 2월부터 국토부의 직권조사가 가능해져 한국감감정원과 합동으로 ‘실거래상설조사팀’을 구성해 보다 효과적인 상시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세무당국의 계획은?
국세청은 ‘관계기관 합동조사’에서 통보된 탈세 의심자료와 최근 고가아파트 취득자를 대상으로 자금출처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차입금을 이용한 편법증여 등 일부 탈루혐의도 포착, 검증대상자로 선정했다.

국세청은 통보받은 탈세의심자료 중 증여세 신고기한이 아직 경과하지 않은 등의 사유로 탈루혐의를 확인하기 어려운 사례를 제외한 자료에 대해 우선 분석에 착수했다. 통보자료 외에도 그동안 고도화된 차세대국세행정시스템(NTIS)의 다양한 과세정보와 국토부의 자금조달계획서, 금융정보분석원(FIU) 정보 등 과세 인프라를 활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최근 수도권은 물론 대전·부산 등 지방 과열지역의 고가 아파트 취득자를 대상으로 소득·재산·금융자료와 카드 사용내역 등 자산·지출·소득 연계 분석에 들어가 현금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 조사 대상은 부모 등으로부터 현금을 편법증여 받거나 사업자가 사업소득을 탈루하는 등 자금출처가 불분명한 탈세혐의자다.

다만 조사 일정 등이 언제 마무리 될지는 미지수다. 세무업계 관계자는 “세무조사가 강제성이 있어도 납세자의 일정을 고려해 소명 자료 등을 받기 때문에 정확한 조사 진행상황이나 마무리 시점 등은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국세청의 징수 의지는 확고하다. 국세청 관계자는 “자금조달계획서 등을 적극 활용해 고가주택 취득자의 자금출처를 전수 분석하고 탈루혐의자는 예외 없이 세무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조사결과 탈세 등 범법행위가 확인되면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고발하는 등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30호(2019년 2월4~1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