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축구대표팀 주전 골키퍼 조던 픽포드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사진=로이터

유럽 각국의 축구계가 한숨 돌렸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지난 18일(이하 한국시간) 전세계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오는 여름 예정된 유로2020을 1년 미루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로가 연기되자 대표팀 예상 명단을 추리하던 각국 매체들은 다소 김이 빠졌다. 하지만 여전히 '뜨거운 감자'는 존재한다. 이 중에는 잉글랜드 대표팀 '안방 경쟁'도 포함된다.

잉글랜드는 60주년(1년 연기돼 정확하게는 61주년)째를 맞아 열리는 이번 유로 대회에서 우승을 노린다. 자신감의 근거는 탄탄한 선수단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중심으로 최근 수년 간 화수분처럼 재능 넘치는 선수들이 터져나왔다. 이 중 공격수 제이든 산초(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등 일부 선수들은 해외 구단으로 이적해서도 능력을 입증하며 자신들이 세계 무대에서 충분히 먹힐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골문은 다르다. 독주 체제로 굳어질 것 같던 잉글랜드 골문에 균열이 감지됐다.


'월드컵 넘버원' 픽포드가 수상하다



에버튼 골키퍼 조던 픽포드는 최근 잦은 실수로 도마 위에 올랐다. /사진=로이터
최근 잉글랜드 골문을 지켜온 건 조던 픽포드(에버튼)였다. 1994년생으로 아직 26세밖에 되지 않은 픽포드는 이미 프리미어리그 경력이 174경기에 달하는 '준 베테랑'이다. 첫 메이저 대회였던 2018년 FIFA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곧바로 주전을 꿰차 잉글랜드의 4강 진출에 일조했다. 이변이 없는 한 향후 10년 동안 잉글랜드 골문을 지킬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랬던 픽포드가 유로 대회를 앞두고 흔들렸다. 픽포드는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29경기에 출전해 46골을 실점했다. 클린시트(무실점 경기)는 6경기에 그친다. 반면 실점으로 직결된 실책은 7회나 범했다. 리그 내 다른 잉글랜드 국적 골키퍼 중 가장 많은 수치다.

특유의 다혈질적인 성격과 큰 기복이 부진의 원인으로 꼽힌다. 픽포드는 지난달 8일 열린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리그 경기에서 후반 6분 실수를 범해 크리스티안 벤테케에게 골을 헌납한 게 대표적이다. 1번의 실수로 모든 게 결정되는 국제대회에서는 골키퍼의 안정감이 그만큼 중요한데, 픽포드의 잦은 실수는 이를 뒤흔드는 주요 요소다.


전문가들도 픽포드의 입지에 의문을 자아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이름난 주장이었던 로이 킨은 "픽포드는 좋은 골키퍼가 아니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잉글랜드 대표팀 선배이자 아스날의 전설적 공격수였던 이안 라이트도 "픽포드는 잉글랜드의 '넘버1'이지만, 솔직히 그가 얼마나 더 오래 이 자리를 유지할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일단 픽포드는 유로 대회가 1년 미뤄지면서 한 숨 돌릴 시간을 벌었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도 이달 초 "픽포드를 향한 내 확신을 바꾸지 않겠다. 픽포드는 지난 3년 간 우리를 위해 좋은 플레이를 펼쳤다. 그가 회복하길 기대하고 있다"라고 변치 않는 믿음을 나타냈다. 하지만 픽포드가 이런 요소들로 인해 현실에 안주하기에는 지금 처한 경쟁 상황이 너무나 치열하다.

안방을 노리는 두 사자, 닉 포프와 딘 헨더슨



닉 포프(왼쪽, 번리)와 딘 헨더슨(셰필드 유나이티드)은 유로2021에서 조던 픽포드의 유력한 경쟁자로 손꼽힌다. /사진=로이터
픽포드의 입지를 가장 날카롭게 위협하는 두 골키퍼는 닉 포프(번리)와 딘 헨더슨(셰필드 유나이티드)이다. 두 선수는 픽포드가 주춤한 틈을 타 각각 극한의 안정감과 젊은 피를 앞세워 잉글랜드 주전 장갑을 노리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200경기 출전을 가시권에 둔 픽포드와 다르게, 두 선수는 1부리그 무대에서 신예나 다름없다. 1992년생인 포프는 버리 타운, 찰튼 애슬레틱, 앨더숏 타운, 요크 시티 등 하부리그 구단들을 전전하다가 지난 2016년에야 번리에 입단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유스 출신인 헨더슨도 하부리그 임대를 다니다가 지난 시즌부터 셰필드 유나이티드로 임대, 비로소 상위리그 주전 자리를 꿰찼다.

그럼에도 두 선수는 남다른 안정감을 바탕으로 '1부리그 선배' 픽포드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영국 '스카이스포츠'가 통계전문 매체 '옵타'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포프와 헨더슨은 지난 2017년 이후를 기준으로 리그에서 기대 선방률이 각각 6.45와 6.43을 기록했다. 반면 픽포드는 같은 지표에서 -4.81에 머물렀다.

두 선수는 같은 기간 '90분 당 슈팅으로 이어진 실책' 부문에서도 각각 0.03회, 0.04회에 그쳤다. 무엇보다도 골키퍼의 가장 중요한 항목 중 하나인 클린시트 부문에서 포프는 11회, 헨더슨은 10회로 리그 전체 1, 2위를 독식했다. 알리송(리버풀, 10회), 에데르송(맨체스터 시티, 9회), 다비드 데 헤아(맨유, 8회) 등 세계적 골키퍼들을 모두 앞섰다.

2019-2020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29라운드까지의 클린시트 순위. /사진=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두 선수의 활약에 전문가들도 '이제는 모른다'는 평가를 내린다. 전 잉글랜드 대표팀 공격수였던 크리스 서튼은 "현시점에서 픽포드가 헨더슨, 포프보다 낫다고 평가할 수 없다"라며 "소속팀에서 픽포드의 폼은 변덕스럽기 그지없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두 선수가 픽포드에게서 완전히 앞선다고 단정짓긴 어렵다. 포프는 하위권 구단 위주로 몸담았던 탓에 수비진을 이끄는 부문에서 의문 부호가 붙는다. 헨더슨의 경우 23세로 아직 젊은 나이인데다 다음 시즌 맨유로 복귀할 시 데 헤아와의 주전 경쟁 구도에 따라 평가가 완전히 바뀔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현재 활약이 이어진다면, 만약 픽포드가 내려올 시 잉글랜드 골문은 이 두 선수 중 한 명이 맡을 공산이 크다.

쏟아지는 재능들… 사우스게이트의 '행복한 고민'



잉글랜드는 최근 수년 간 골키퍼 재능들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2012 런던 올림픽 주전 수문장이었던 잭 버틀란드(스토크 시티)와 더불어 최근 사우스햄튼의 주전 자리를 차지한 앵거스 건, 마치 수년 전 10대의 나이에 선덜랜드 안방을 차지한 픽포드처럼 최근 본머스의 기대를 받고 있는 아론 람스데일 등이 있다.

베테랑 골키퍼들도 유로2021 승선을 노린다. 픽포드 이전에 잉글랜드 골문을 책임졌던 조 하트(번리), 조 하트의 자리를 위협했던 톰 히튼(아스톤 빌라), 201㎝의 월등한 피지컬을 자랑하는 프레이저 포스터(사우스햄튼) 등이 아직 남아있다. 메이저대회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젊은 골키퍼들에게 필요한 경험적 측면을 채울 수 있는 자원들이다.

잉글랜드의 국제무대 성공에는 항상 전설적인 골키퍼들이 함께했다.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고든 뱅크스를 시작으로 피터 셀튼, 데이비드 시먼, 데이비드 제임스 등이 잉글랜드의 안방을 책임졌다. 하지만 시먼의 은퇴 이후 잉글랜드의 안방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특출한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어수선했다.

전설들의 명성을 이을 만한 골키퍼들이 속출하는 지금,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1년 넘게 남은 준비 기간동안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됐다. '20대 재능'들이 잉글랜드의 오랜 숙원 중 하나인 유로 대회 우승에 일조할 수 있을지 축구팬들의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