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산업에서 말하는 플랫폼은 기반기술이다. 이 기술은 여러 종류의 단백질 타깃 물질을 바꿔 다양한 후보물질을 도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겉모습은 똑같아 보여도 속이 다르다는 뜻이다. 플랫폼 기술을 활용할 경우 수십 수백개의 신약후보물질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플랫폼 기술을 가진 회사가 업계를 선도할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코로나19에 플랫폼 기술 재조명
바이오 플랫폼 기술은 코로나19 백신에 적용되면서 인류를 구원할 무기가 됐다. 선두기업으로 꼽히는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대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등은 모두 플랫폼을 활용해 백신 개발에 나섰다. 플랫폼 기술을 활용한 백신은 아직 실용화된 사례가 없지만 코로나에서 벗어나게 해줄 승부처가 된 셈이다.
앞서 언급된 기업이 플랫폼을 활용해 코로나19 백신은 개발을 시작한 지 반년 만에 임상3상에 진입했다. 유례없는 개발 속도는 플랫폼 기술이 가진 데이터의 위해성 우려가 적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백신 개발에서 필수로 거쳐야 하는 약독성 시험을 건너뛰거나 임상1상과 2상을 동시에 진행하는 등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현재 코로나19 백신의 유력 플랫폼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핵산 백신(mRNA백신)과 재조합 바이러스 벡터 백신이다. mRNA 백신은 항원 단백질을 만들게 하는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인체에 투입해 면역반응을 유도한다. 스파이크 단백질(항원)을 만들도록 재조합한 DNA를 인체에 주입하는 방식이다. 재조합 바이러스 벡터 백신은 감기 바이러스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유전자를 조합해 만드는 것으로, 병원성 없는 바이러스에 병원체 항원 유전자를 재조합하는 방법이다.
연이은 잭팟… 이유는 플랫폼
플랫폼 기술은 코로나뿐 아니라 신약후보물질에 적용되면서 가치를 높이고 있다. 특히 올해 국내 제약기업이 개발한 플랫폼 기술의 성과가 봇물을 이뤘다. 레고켐바이오·알테오젠·한미약품 등이 개발한 플랫폼 기술이 역대급 계약금을 챙기며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다.
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올해 제약·바이오기업이 다국적기업에 기술수출을 성사시킨 4건 모두 플랫폼 기술 관련 약물이며 그 규모만 6조4720억원에 달했다.
한미약품은 미국제약기업 MSD와 신약후보물질 ‘LAPSGLP/Glucagon 수용체 듀얼 아고니스트’를 비알코올성지방간염 치료제로 개발·상용화하는 1조원 규모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한미약품의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가 적용된 신약후보물질은 GLP-1(인슐린의 분비를 증가시키는 체내 호르몬)과 글루카곤(인슐린과 반대 작용을 하는 단백질성 호르몬)을 동시에 활성화하는 이중작용 치료제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랩스커버리는 반감기가 짧은 바이오의약품의 단점을 보완한 기술”이라며 “이 기술을 후보물질에 적용할 경우 약물 투여량과 부작용은 줄이고 효능은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져 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랩스커버리 기술이 적용된 물질은 환자가 매주 주사를 맞아야 하는 번거로움에서 자유롭게 해 준다”며 “환자의 복용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기술”이라고 덧붙였다.
알테오젠은 ALT-B4(히알루로니다제)라는 플랫폼 기술을 총계약규모 4조6770억원에 글로벌 10대 제약기업에 기술수출하는 잭팟을 터트렸다. ALT-B4는 정맥주사 제형의 약물을 피하주사로 변경시켜주는 기술이다. 환자가 정맥주사를 맞으려면 병원에서 4~5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머물러야 하지만 피하주사는 5분 안에 손쉽게 약물 투여가 가능해 환자에게 편리하다.
레고켐바이오는 약물-항체결합기술(ADC)이 접목된 항암신약의 기술수출에 성공했다. 2건의 기술수출로 레고켐바이오가 기대할 수 있는 수익금은 최대 7685억원에 달한다. 레고켐바이오의 ADC는 항체와 약물을 이어 원하는 부위에서 약물의 기능을 작동하도록 하는 플랫폼 기술이다.
플랫폼, K-바이오 신사업 모델
바이오 업계에선 플랫폼 기술을 활용해 다수의 다국적 제약사와 협업하는 방식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탄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글로벌 제약사 사이에선 신약개발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약물 전달을 효율화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을 찾으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어서다.
플랫폼 수출 중심의 사업모델을 표방하는 국내 업체로는 에이비엘바이오와 셀리버리가 꼽힌다. 두 기업은 약물을 전달하는 핵심 플랫폼 기술을 소유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이중항체 기술(그랩바디)을 바탕으로 다양한 치료제 후보물질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을 이전해 수익을 내는 사업구조를 지녔다.
셀리버리는 생채 내 전송(TSDT) 플랫폼 기술을 보유했다. 글로벌 제약사에 TSDT 플랫폼 기술과 후보물질 라이센싱을 추진하는 사업모델을 표방한다. TSDT는 전송할 수 있는 물질의 크기에 제한 없이 고분자 물질을 세포 안으로 전송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바이러스로 인해 폐섬유 등 단백질 덩어리가 막아 치료제를 인체에 주입되더라도 문제 세포에 무사히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일 때 이런 단백질을 분해해 세포에 치료제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셀리버리 관계자는 “TSDT는 세포 내 전달능력 부재로 약물로 개발되지 못한 후보물질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방식”이라며 “타 전달 기술과 비교해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TSDT는 사업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