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아프리카 정치·경제 모범국가로 칭송을 받던 말리에서 군사 쿠데타로, 대통령이 불명예 퇴진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서아프리카 말리의 이브라힘 부바카르 케이타 대통령은 사임하고 의회를 해산한다고 밝혔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케이타 대통령과 부부 시세 총리를 구금한 지 수 시간 만에 나온 결정이다.
그는 국영매체에 방송된 연설에서 "나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 어떠한 피도 흘리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말리에서는 지난 수개월 동안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로 케이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계속됐다.
야당과 재야 인사들은 범민주 연합을 결성해 대통령 퇴진 시위를 이끌었다. 이들은 정부가 경제 파탄과 부패에 책임이 있으며 극단세력의 폭동을 다루는 데 실패했다고 비난했다.
말리는 왜 몰락했나?
말리는 한때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성장을 이어온 ‘아프리카의 모범국가’라는 평을 받았다. 1992·1997·2002년 선거 등을 통해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이뤄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아프리카 국가처럼 부족 간 갈등이 불씨가 돼 혼란이 커졌다. 프랑스의 옛 식민지였던 말리는 세네갈, 니제르, 마다가스카르 등과 함께 1960년 독립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서구 열강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국경이 정해지면서 부족 간 갈등 심화로 내전을 겪게 된 경우가 많다.
말리의 불안정은 북부 지역에 거주하는 투아레그족이 분리 독립을 요구한 데서 비롯됐다. 1989년부터 강력한 자치를 요구해 온 투아레그족은 1990년 6월 아자와드독립국 신설을 위한 아자와드민족해방운동(MNLA)을 결성해 반정부 투쟁을 시작했다.
2012년 3월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자 이들은 주로 사막인 북부 지역을 장악했다. 여기에 알카에다 북아프리카지부(AQIM)와 AQIM에서 떨어져 나온 ‘서부아프리카의 통일과 지하드를 위한 운동(MOJWA)’, 투아레그족 출신이 주도하는 안사르딘 등 이슬람 세력이 빈곤과 부패를 토양 삼아 이 지역에서 세력을 키웠다.
2013년 프랑스 주도의 군사작전으로 지하디스트들은 대부분 축출됐지만 이후 북부 지역은 정부로부터 버림 받은 영토이자 불법 행위와 무장 세력이 활개치는 영토가 됐다. 프랑스군이 이슬람 반군을 축출한 지 5년이 흘렀지만 반군 준동으로 이 지역은 여전히 정세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말리 정부와 투아레그족 사이의 평화협정이 맺어지고 유엔 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투가 빈발하고 있다.
케이타, 벼랑 끝에 몰린 이유는?
케이타 대통령은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총리를 지냈고 2002년부터 2007년까지 국회의장을 맡았다. 2013년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2018년 재선에 성공했다.
정국을 안정시키겠다는 케이타 대통령에 말리 국민들은 다시 한 번 힘을 실었다. 하지만 말리 북부의 안보위기, 코로나 바이러스, 교사파업, 3월 총선(2020년)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 등으로 케이타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에 내몰렸다.
결국 올해 6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고 '애국세력 6월 5일 대회 운동'이란 반정부 연대체가 구성됐다. 종교 지도자들과 시민 사회가 반정부 진영에 감당해 케이타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날(6월 5일) 시위대는 바마코의 독립광장을 점거하고, 케이타 대통령에게 사임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반정부 시위 이후 케이타는 교사들의 급여인상을 포함해 일련의 개혁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반정부 인사를 포함하는 새로운 통합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정치적 갈등은 지속됐고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물리적 충돌도 벌어졌다.
8월 18일 말리 수도 바마코에서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대통령과 총라를 구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군인들은 이날 아침 바마코 외곽에서 15㎞ 떨어진 카티 군기지에서 반란을 일으켜 수많은 고위 민간 공무원과 군사 관리들을 전격 체포했다. 카티 군기지는 2012년 쿠데타가 일어났던 곳이다.
쿠데타가 발생한지 몇 시간 후 케이타 대통령은 사임의사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