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사옥 앞에서 삼성해고 노동자 고공농성공대위, 과천 철거민 대책위원회,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이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선웅 기자
지난 12일 재계의 큰 관심을 끈 판결이 나왔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이 삼성그룹의 금융계열사와 삼성 어린이집 2곳 등이 지난 5월13일 ‘보암모’(보험사에대응하는암환우모임)를 상대로 낸 집회시위금지 가처분신청을 일부 받아들인 것. 보암모는 건물 점거행위는 물론 반경 100m 이내 시위관련 물품도 놓을 수 없게 됐다.
대기업 사옥 앞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다. 특히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은 농성의 명소로 꼽힌다. 이미 10년째 시위를 이어오는 단체도 있다. 그런데 이곳에 입주한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자산운용 등 삼성금융계열사와 삼성 어린이집 2곳이 집회를 금지해 달라고 요청한 이유가 뭘까.

표면적으로는 오랜 집회로 금융계열사들의 피해가 큰 데다 어린이집 원아가 불안했기 때문이지만 재계에서는 시위단체가 도를 넘은 탓이라고 본다. 재계 관계자는 “일반적인 시위단체는 집회 신고를 한 시간에 시위를 하고 소음규정(주간 75데시벨(db), 야간 65데시벨)도 지킨다”며 “보암모는 수 개월 동안 고객센터에서 먹고 자며 점거 시위를 벌이는 등 업무방해로 인한 피해가 커진 점이 가처분신청의 배경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삼성생명이 시위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건 설립 63년 만에 처음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원 판결에 기업들 관심 보인 이유는




기업들이 지난 12일 판결에 관심을 보인 건 시위로 인해 직·간접적 피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 판결이 난 사안임에도 막무가내 시위를 이어가거나 단순히 깎아내리기 식도 있다는 게 기업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피해를 호소한 기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같은 시위의 공통점은 ▲형형색색의 현수막 ▲혐오스러운 이미지와 문구 ▲상여곡이나 육성녹음 등을 재생 ▲시위와 관련 없는 내용 ▲사실이 아닌 내용 ▲거리낌 없는 욕설 등이다.


기업들은 지난 5월 역삼동 GS타워 앞 자극적인 문구가 적인 현수막이 걸린 사례도 그 중 하나로 꼽는다. 무단결근 등으로 해고된 A씨는 2010년 해고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고 2018년부터 1인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서초구 하이트진로 사옥 앞에 걸린 현수막. /사진=독자제공

하이트진로 서초사옥 앞에도 현수막이 걸려 있고 시위가 이어진다. 입주 직장인 이모씨는 “시위 대상과 상관이 없는 데도 왜 욕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확성기 소리에 머리가 아프다”며 “하루 종일 들리는 악에 바친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라고 전했다.
양재동 현대·기아차 사옥 앞도 각종 시위로 몸살을 앓는다. 특히 사옥 앞 인도에는 4년째 커다란 파란색 천막이 설치돼 있다. 그룹 총수와 사측을 비난하는 현수막과 입간판도 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유성기업의 노조파괴에 개입했다고 주장하는 시위다.

한 기업 관계자는 “특히 오너에 대한 공격은 기업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며 “현수막이나 확성기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가처분신청을 하면 단속 때만 조용히 하거나 새 현수막을 설치하는 식으로 시위를 이어간다”고 주장했다. 
삼성에스원-웰스토리 노조 2020년 임협 촉구 기자회견 장면. /사진=뉴시스 전신 기자

기업도 시민… 서로 존중해달라



현행법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행법상 집회와 시위 신고를 하면 최대 30일 동안 현수막을 걸 수 있는데 매달 신고할 경우 연중 설치가 가능한 셈”이라며 “구청에서는 현수막이 도로를 점거한 게 아니어서 강제철거도 어렵다는 입장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점 때문에 시위 현장 주변 상인과 주민들은 “집회와 시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기업들은 도를 넘은 시위에 대응 수위를 높일 계획이다. 불법 시위로 인한 기업 이미지 훼손은 물론 기업 직원과 인근 주민, 주변을 지나는 시민의 항의가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시위 중단에 대한 협의를 이어가기도 하지만 도를 넘어서는 시위에 대해서는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지속된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심혈관계 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시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다른 이들의 자유도 존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