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부터 70대까지 여성을 강간·살해·유기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가 34년 만에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2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다. 사진은 이춘재가 출석하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501호 법정 /사진=뉴스1
대한민국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장기미제사건이던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 이춘재(56)가 1980년 중반부터 90년대 초까지 경기 화성과 충북 청주에서 자신이 저지른 살인사건 14건에 대해 "내가 진범이 맞다"고 자백했다.
2일 오후 1시 30분 수원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박정제) 심리로 열린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재심 공판기일에 참석한 이춘재는 피고인이 아닌 증인 신분으로 법정에 출석해 이같이 말했다.

이날 재판은 이춘재 대신 연쇄살인 8차 사건의 진범으로 몰려 20여년 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씨(53)의 재심이었기 때문이다.


증인신문은 윤성여씨 측 변호사의 질문으로 시작됐다.

박준영 변호사가 자백 계기를 묻자 이춘재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진술을 거부하려고 했으나 전문 프로파일러 때문에 진술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은) 연쇄살인 사건 10건 중 9건(8차 제외)에 대해 증언하라고 했는데 그걸 빼고 진술하면 진실이 될 수 없어서 범행 모두를 자백했다"고 덧붙였다.

이춘재는 자백 당시 '왜 프로파일러의 손을 만졌냐"는 박 변호사 질문에 "손이 예뻐서 그랬다. 얼굴이나 몸매는 보지 않는다. 손이 예쁜 여자가 좋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박 변호사는 또 "가석방을 희망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범행 인정 진술로 가석방 가능성이 없어질 것을 생각했나"라고 묻자 "그런 생각은 했지만 사건이 영원히 묻힐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다"고 답했다.

이어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젠가 교도관들이 재소자들의 DNA를 채취해갔는데 이 때문에 경찰에서 곧 알게 되리라 생각했다"면서 "범죄 할 당시 현장에 대해 은폐라든지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DNA 채취하고 금방 경찰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만 "경찰은 바로 찾아오지 않았고 그 때문에 잊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이춘재는 흰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보이는 짧은 머리에 하얀 마스크와 빛바랜 파란 수형복을 입고서 법정에 입장했다. 그는 길고 갸름한 눈매에 길쭉한 얼굴형, 하얀 피부로 온라인상에서 알려진 사진과 유사한 모습이었다.

이번 공판은 방청객 편의를 위해 주법정과 멀티법정(화면 중계) 두 곳으로 나눠 진행됐다. 앞서 담당 재판부는 언론의 이춘재 실물 촬영 요청에 대해 증인 신분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당시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자택에서 잠을 자던 박모씨(당시 13세)가 성폭행으로 숨진 사건이다.

이듬해 범인으로 검거된 윤성여씨는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윤씨는 사건 당시 1심까지 범행을 인정했다. 이후 2·3심에서 고문을 당해 허위 자백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년 동안 수감생활을 한 윤 씨는 감형돼 2009년 출소했고 이춘재의 자백 뒤 지난해 11월 재심을 청구했다.

한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 7월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최종 수사 결과,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화성과 수원 등지에서 이춘재가 총 14건의 살인사건과 9건의 강간 사건을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이춘재는 이른바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알려져 있던 10건의 살인사건을 모두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그뿐만 아니라 수원과 화성, 청주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4건도 그가 저지른 범행이었다.

이번 수사를 통해 기존에 드러난 혐의 말고도 추가로 범행이 밝혀졌지만 모두 공소시효가 지나면서 처벌이 불가능해졌다.

이춘재는 지난 1994년 1월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후 현재까지 부산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