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리커창 총리. 최근 중국 국영기업들이 잇따라 디폴트를 선언하는 등 중국 채권시장에 큰 변화가 오고 있다./사진=로이터
10월23일 BMW 중국 내 합작 파트너사로 잘 알려진 중국 국유 자동차 기업 ‘화천그룹’은 10억위안의 사모채를 제때 갚지 못하고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결국 선양 중급법원은 화천그룹의 채무상환 능력 부족에 따른 파산과 구조조정 신청을 접수했다. 베이징 반도체 기업 ‘칭화유니’는 10월29일 10억위안 규모의 사채를 갚지 못한 데 이어 11월15일에는 13억위안의 사모채에 대해 추가 디폴트를 냈다. 11월10일엔 허난성 국영 석탄 업체 ‘융청매전’도 10억위안 규모의 단기채에 대해 디폴트를 냈다. 다만 같은 달 25일 원금의 50%를 상환하고 나머지 채무의 상환을 연장하기로 했다.

‘절대 안전자산’으로 취급되던 트리플A(AAA) 등급의 중국 지방정부 소유 국영기업의 디폴트 사례가 잇따르면서 국영기업 채권투자의 불패신화가 붕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국영기업들은 지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실제 경영상황과 상관없이 높은 신용등급을 유지해 왔다. 화천그룹·칭화유니·융청매전의 신용등급은 디폴트 발생 전까지 AAA였다. 이들 기업의 신용등급은 디폴트 이후 순식간에 투기등급으로 강등됐다. 현재 신용등급은 ▲칭화유니 BBB ▲융청매전 BB ▲화천그룹 C다.

외교 소식통은 “지방정부가 소유한 기업의 경우 어려움을 겪더라도 정부가 나서 채무상환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 때문에 높은 신용등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서도 “시장의 기대와 달리 지방정부의 지원 의지도 약해졌고 채권을 상환해 줄 여력에도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표=김영찬 기자

디폴트 후폭풍, 얼어붙은 中 채권시장

국영기업의 디폴트는 시장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중국 채권시장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장정보업체 ‘윈드’에 따르면 11월15일 기준 올해 중국의 회사채 디폴트 규모는 165건, 1554억위안에 이른다. 이중 국영기업의 디폴트는 지난해 16건에서 올해 71건으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중국 채권시장에서 채권 발행이 취소되고 발행금리가 치솟고 있다. 11월10일부터 19일까지 모두 53개 기업의 채권 발행이 취소됐거나 지연되고 있다. 채권 발행이 취소된 금액만 해도 398억8000만위안에 이른다. 지난 13일 하루 동안만 95억5000만위안의 채권 발행이 취소 또는 무기한 연기됐다.

채권 발행 금리도 치솟고 있다. 11월 첫째주 3%대였던 표면금리 이율은 ▲둘째주 4% ▲셋째주 5%대로 올랐다. 11월 거래기록이 있는 1535개 회사채 중 가격 하락 채권이 830개, 상승 채권이 584개였다. 이중 낙폭 10% 초과 채권은 200여개로 낙후지역 채권이 다수였다. 자금조달 금리가 올라가면 신용기반이 허약한 기업들은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이는 자금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기업의 부도가 확산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은행 북경사무소 관계자는 “감독당국이 신속하게 조치를 취했고 중국 경제도 견조하게 회복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시장에 유동성도 풍부한 상황이어서 국유기업의 연쇄부도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유동성 공급을 늘리면서 기업의 상환능력이 저하되는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실채권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금융위기로 번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경기가 회복될 경우 중국 당국이 점진적으로 불량 대출을 줄여갈 가능성도 점쳐진다. 코로나19 충격이 초래한 금융 위험이 지연돼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표=김영찬 기자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싱크탱크인 ‘국가금융발전실험실’(NIFD)에 따르면 올 3분기 말 기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270.1%로 지난해 말 245.4%보다 크게 올랐다. 다만 인민은행은 “예방·조기경보·대처·문책 시스템을 완비함으로써 시스템적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마지노선을 확고하게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신용등급 신뢰 바닥에… 당국 화들짝

최고 신용 등급을 받던 중국의 대형 국유기업이 잇따라 디폴트를 내는 사태가 발생하자 중국 경제정책의 책임자인 리커창(李克强) 총리까지 나서 ‘허위 신용등급’을 내세운 신용평가사를 엄벌하겠다는 경고를 내놓았다.

11월26일 중국 국무원은 리커창 총리 주재 회의를 열고 신용평가기업의 수준을 높이는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 결과 국무원은 “종합적으로 법체계를 정비하고 문책 제도를 강화해 법에 따라 허위 신용등급 등 행위를 엄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융청매전의 디폴트가 발생한 11월10일 이후 중국 채권시장은 크게 위축됐다. 채권과 펀드의 가격은 하락하고 30여개 신규 채권 발생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최근 중국 채권시장에서 신용평가에 대한 신뢰도도 크게 낮아지고 있다. 중국은 현재 토종업체 위주로 신용 평가 시장이 구성돼 있다. 이 때문에 객관적인 신용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9월 말 기준 중국 채권 발행사 중 신용등급 AA 이상 비중이 90%를 초과하고 있다. 이중 AAA 기업은 27.6%에 이른다. AAA 기업의 채권 발행 잔액은 전체 시장의 63.7%다.

반면 미국의 경우 투기등급인 B급이 전체 시장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투자 적격기업 중 BBB도 다수다. AA 이상 고등급은 5% 미만이다. 일본의 경우 고등급인 AA급 이상은 15% 미만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국무원은 신용평가 정확도를 제고하기 위해 정부와 공공기관이 신용평가 업무와 관련된 자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