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오프라인 ‘유통 공룡’으로 군림했던 대형마트가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최근 소비의 중심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마트를 찾는 발길이 줄어들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신규 매장을 열기만 해도 고객이 몰리던 시절은 끝이 났다. 굳이 대형마트에 가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혹은 집 근처 편의점과 슈퍼마켓에서 원하는 물건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게다가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오프라인 유통업계의 불황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됐다. 확진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대형마트로 쇼핑하러 갈 이유를 찾기 어려워졌다. 급변하는 유통 환경 속에서 대형마트는 생존을 위한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
대형마트 ‘울고’ 온라인 ‘웃고’
코로나19 여파로 직접 매장에 가는 대신 온라인 구매를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오프라인 매출 비중이 높은 대형마트에게는 악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유통업계의 온라인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6% 늘었으나 오프라인 매출은 5.8% 줄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년 동기 대비 오프라인이 58%에서 51.5%로 낮아졌고 온라인은 42.0%에서 48.5%로 확대됐다. 오프라인 매출은 매장 영업시간 제한과 한파 등에 따른 외부활동 제약으로 지난해 11월(-2.4%)부터 12월(-4.4%)과 올해 1월(-5.8%)까지 3개월 연속 감소세다.
업태별로는 대형마트가 가장 큰 손실을 입었다. 지난 1월 기준 대형마트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7% 감소했다. ▲잡화(-42.0%) ▲의류(-29.3%) ▲가정·생활(-26.6%) 품목을 중심으로 극심한 매출 감소세를 보였다. 백화점과 기업형 슈퍼마켓(SSM) 매출도 각각 6.3%, 3.3% 감소했으나 대형마트보다 피해가 덜하다.
반대로 소비자 인접성이 좋은 편의점 매출은 2.4% 증가했다. 코로나19로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 멀리 쇼핑을 나가는 경우는 줄어들고 집 근처에서 생필품을 구매하는 소비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다.
몸집 줄이는 유통 공룡
온라인에 유통 주도권을 내준 대형마트가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다. 관련 업계는 부실 점포를 정리하거나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수익성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12개 점포를 폐점했다. 2019년 말 124개였던 롯데마트의 매장 수는 현재 112개로 줄었다. 롯데마트의 최근 3년간 누적 영업적자는 660억원이다. 롯데마트를 운영하는 롯데쇼핑은 실적 타개를 위해 점포 정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도 수익이 부진한 점포를 위주로 추가 폐점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미 강희태 롯데그룹 부회장이 향후 3~5년간 롯데마트 50개 곳을 폐점한다고 공언한 상태다.
홈플러스는 오는 6월 대구 수성구 대흥동에 있는 ‘대구스타디움점’의 문을 닫는다. 대구스타디움점은 2011년 9월 대형 복합쇼핑몰인 대구스타디움몰 칼라스퀘어에 입점했다. 개점 후 거듭된 만성 적자와 실적 악화의 고리를 끊질 못하고 폐점을 결정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자산유동화를 위해 안산점·대전탄방점·대전둔산점에 이어 대구 칠성동 1호점마저 폐점하고 순차적으로 매각을 진행했다.
대형마트 3사 중 그나마 선방했다고 평가받는 이마트도 폐점 없는 자산유동화를 꾸준히 진행 중이다. 지난해 3월 스타필드 부지로 점찍었던 마곡지구 땅을 매각한 데 이어 인근 가양점도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폐점 매장이 늘면서 수만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롯데마트는 창사 23년 만에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지난달 24일 전 직급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대상은 정직원 4300여 명 중 동일 직급별 10년 차 이상 직원이다. 캐셔와 무기계약직은 제외다.
수장들도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말 국내 대형마트 최초 여성 CEO였던 임일순 대표를 떠나보냈다. 홈플러스는 임 대표가 일신상의 이유로 퇴임했다고 설명했지만 임기 내내 저조했던 회사 실적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가 앞당긴 오프라인 유통업계 불황이 점포정리에 이어 인원 감축까지 이어지는 모양새다.
대규모점포 10년 옥죄기는 여전
정부의 대규모점포 규제도 코로나19 못지않게 대형마트를 옥죄는 요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대규모점포 규제는 2010년에 도입된 대형마트·SSM 등의 전통시장 인근 신규 출점을 막는 ‘등록제한’과 2012년에 시작된 의무휴업일 지정·특정 시간 영업금지를 골자로 하는 ‘영업제한’이 대표적이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며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가 본격화된 지 10년이 넘었다. 대형마트를 규제하면 전통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정부의 기대와 달리 중소상인의 경영 환경은 여전히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파악한 개인사업자 대출잔액은 2017년 약 315조원에서 2018년 366조원, 2019년 406조원으로 급증했다. 다만 대형마트의 숨통을 조이는 건 상당한 효과를 거뒀다. 대형마트 매출액은 대규모점포 규제가 시행된 2012년부터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은 싸움이 됐다.
최근 유통업태 간 경쟁구도가 ‘대형마트-전통시장’에서 ‘온라인-오프라인’으로 이동하는 등 유통환경이 급변했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한 채 해묵은 규제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대형마트나 SSM이 지역 상권을 흡수하고 소상공인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10년 전 사고방식을 그대로 갖고 있다”며 “지난 10년간 오프라인의 몰락 속에 온라인 쇼핑몰이 공룡으로 성장했는데 계속해서 대형마트만 규제하는 건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