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배터리 산업은 한·중·일 3파전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10위권 내 업체만 기준으로 할 때 지난해 3국의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판매량 점유율은 92.1%다. 국가별로 보면 중국 37.5%, 한국 34.7%, 일본 19.9%다.
이들의 리튬이온 배터리 소재 원천 기술이 엇비슷해진 만큼 전기차 배터리 선두권 자리를 두고 국가 간 패권 경쟁은 심화되고 있다. 미국의 에너지 패권에 휘둘렸던 중국은 대규모 인력과 자본을 투입하며 영향력을 무섭게 키워가고 있다. ‘2차전지 종주국’ 일본은 차세대 전지 개발로 배터리 주도권을 바꾸겠단 목표다.
누가 더 멀리 오래 달리나 ‘배터리 삼국지’
경쟁국의 장단점은 명확하다. 중국은 탄탄한 내수시장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강점이다. 중국은 2016년부터 자국산 배터리 탑재 전기차 구매 시 보조금을 지급해왔고 현재도 대당 약 300만원을 지원한다. 중국 정부는 글로벌 완성차업체가 자국 내에서 전기차를 생산할 경우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할 것을 종용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성장 잠재력도 크다.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인 CATL의 경우 2025년까지 약 500GWh(기가와트시·배터리 용량 단위) 생산을 목표로 투자하고 있다. 이는 국내 배터리3사의 생산능력을 합산해도 못 따라가는 규모다.
중국 업체는 세계 최대 전기차 무대인 자국 시장을 테스트베드 삼아 기술력도 축적하고 있다. 5~6년 전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이전받은 기술과 ‘인력 빼가기’로 중국은 완성도 높은 배터리 셀 개발 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리튬이온 삼원계뿐 아니라 원통형 전지와 리튬인산철 기술까지 보유해 선택지가 넓은 것도 강점이다. 자국 내 원료도 풍부하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보조금 정책 등으로 전기차 시장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석유 등 에너지 부족에 대한 집착이 중국 정부의 배터리 투자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배터리 기술에선 여전히 경쟁국과 기술 격차를 보인다. 업계는 내연기관과 전기차의 중간 역할인 하이브리드차 배터리의 경우 중국의 기술 수준은 한국과 15% 차이가 나는 것으로 평가했다.
일본은 2차 배터리의 종주국이다. 소니는 1991년 리튬이온배터리 상업화에 나서면서 북미와 유럽을 제치고 배터리 산업 종주국으로 자리를 공고히 했다. 분리막과 양극재 등 배터리 소재 시장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했지만 전기차용 배터리 투자 면에서 경쟁국에 뒤처지며 선두를 놓쳤다.
일본은 차세대 배터리 시장에서 승부수를 띄우겠단 전략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요시노 아키라 명예 펠로는 “일본 기업은 씨름판에서 싸우지 않는다. 우리는 가격보다는 기술 경쟁으로 간다”고 언급했다.
일본 배터리 관련 기업 30여개는 올해 4월 사단법인 ‘전지 공급망 협의회’를 설립한다. 도요타와 파나소닉 등 완성차와 배터리 양대 업체와 부품·소재 업체가 참여하는 기구다.
기업 적극적 R&D·정부 전폭 지원 필요
한국은 생산설비 투자와 시장지배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국내 기업은 대륙별로 생산공장을 구축하면서 물리적 거리와 원가절감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3사는 지난해 연구개발(R&D) 대비 두배가 넘는 4조5000억원을 생산능력 증대에 투자했다.
국내 배터리업계는 글로벌 합작사 설립을 통해 안정적인 수요도 확보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사를 설립하고 미국에 35GWh 규모의 공장을 짓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중국 베이징자동차와 장쑤성 창저우에 배터리 공장을 세우고 베이징자동차의 전기차 등에 제품을 탑재하고 있다.
반면 정부 지원과 내수의 부족 및 원료 확보 등 사업 환경에선 열세다. 일부에선 한국이 중국의 물량 공세와 일본의 기술력 사이에 끼인 형국이란 시각을 내놓는다. 중국과 일본이 각자의 경쟁력을 앞세워 패권 경쟁에 나선 가운데 한국이 주도권을 유지하려면 파나소닉-도요타 같은 전략적 협력과 산·학·연 참여가 필요하단 제언이 나온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의 셀투팩과 셀투섀시 기술은 배터리사와 완성차업체가 함께 나섰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일부 모델서 리콜이 이어진다. 기업은 품질 전문인력을 보강해 산·학·연과 함께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인적·물적쇄신이 이뤄지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글로벌 3~4위권으로 내려앉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원료 확보를 위해선 기업의 해외투자 지원 및 자원 외교 추진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아프리카와 남미에 투자해 코발트와 리튬을 수입해오고 있다”며 “중국 정부만큼은 아니어도 정부 차원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을 극복할 만한 R&D 투자도 요구된다. 지난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2019년과 비슷하거나 소폭 증가(250억원)에 그친 R&D 비용을 썼다. 양사의 소송 여파에 주춤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SDI만이 전년보다 1000억원 가량 늘어난 연구비를 기록했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인력 확대는 물론 연구원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인센티브를 늘려야 한다”며 “주52시간제, 공장설립 시 규제 등도 많다. 범국가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