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막힌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대뜸 기자에게 딸이라며 연락이 온 것이다. 문자 내용은 이렇다. “엄마, 나 딸. 휴대폰이 깨져서 급하게 수리를 맡겨야 하는데 카드를 집에 두고 왔어. 수리비 30만원만 이체해줘”

내용만 보면 어쩐지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피싱문자’. 이미 비슷한 문자를 받아본 적이 있기에 즉각 문자를 삭제했다.

하지만 만약 이 문자가 내가 아닌 자녀를 둔 누군가에게 갔다면 이렇게 쉽게 문자를 삭제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 등골이 오싹해졌다. 피싱범죄는 누구나 의심할 수 있지만 누구나 자유롭진 않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올해는 유독 피싱문자가 많았다. 예전과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문자에 ‘대출 대상자’라는 내용이 추가된 거다. 이제 피싱범들은 가족 사칭은 물론 은행까지 사칭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 특별 지원제도’ ‘무보증’ ‘이자 지원’ 등 그럴싸한 말을 내세워 전화를 유도해 개인정보를 빼돌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워진 서민 주머니 사정을 이렇게 악용하나 싶어 괘씸해 몇 번이고 스팸문자로 신고했다. 그러다가도 고작 이것밖에 못 하는 상황이 한탄스러웠다. 피싱 사기를 당해 돈을 잃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들의 안타까운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제는 대중적인 사기 수법이지만 피싱범죄가 국내에 상륙한 건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과거 일본과 대만을 중심으로 성행하다가 2006년 처음 국내에 보이스피싱 피해가 보고됐다. 과거 피싱범들은 어눌한 말투를 사용했지만 최근엔 표준어와 어려운 전문용어를 사용하거나 두 명 이상이 수사관과 경찰관 등 역할극을 하는 등 수법도 진화하고 있다.

점점 더 치밀하고 대담해지는 범죄 수법에 정부 역시 보이스피싱과 전쟁을 선포했다. 사전 예방을 통한 피해 근절이 최대 목표다.

실제 지난달 경찰청은 ‘보이스피싱 근절 특별전담조직’을 꾸리고 범죄조직 집중 수사에 나선다고 밝혔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초 보이스피싱과 관련해 진위 확인이 가능한 메시지 서비스 도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전화번호 이용 중지 대상을 확대하고 의심 전화·악성앱 사전차단 기술 개발을 지원, 통합 신고 시스템을 구축해 범죄 대응 체계를 보강한다고 말했다. 검찰과 은행권은 공동으로 ATM(자동입출금기)를 통한 무매체 입금 거래 시 ‘보이스피싱 범행 가담 주의’ 메시지가 표출되도록 ATM 화면을 구성했다. 법무부 역시 피싱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조직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범정부 차원의 근절 노력에도 피해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는 매년 3만건을 웃돌았고 지난해 피해액은 7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문자를 통한 피싱 피해액은 466억원으로 전년동기와 비교해 무려 165.4% 증가했다.

최근엔 피싱범죄 조직들이 젊은 층을 범죄자로 끌어들이는 게 새로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현금수거책을 ‘꿀알바’라고 포장해 10~20대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 10월 말 불법스팸 전송자에 대한 처벌을 기존 1년 이하 징역·1000만원 과태료에서 3년 이하 징역·3000만원 과태료로 강화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목숨까지 앗아가는 범죄에 비해 여전히 처벌 수위가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제 보이스피싱 범죄는 10~20대까지 끌어 들여 가족과 금융회사를 사칭하는 등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대상도 불특정 다수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아 피해가 꾸준히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부의 말뿐인 범죄 근절이 아닌 촘촘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절실한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