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류석우 기자 = "아동학대 사건 가해 부모에 대한 엄벌도 중요하지만, 홀로 남겨진 아이에 대한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징역 30년을 선고받으려면 남은 아이를 지켜낼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부담을 덜고 기소를 할 수 있겠죠."
지난 2020년 10월13일 양모가 생후 16개월된 아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 당시 췌장절단과 장간막 파열 등이 발견될 정도로 심각한 학대를 받은 정황이 드러나면서 많은 국민이 분노했고, 이후 아동학대 사건 예방을 위한 법안과 제도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엄벌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아동학대 사건이 영아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유형이 다양한 데다 가해자가 부모라는 특수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학대가 인정돼 가해 부모를 분리하거나 실형이 선고된다고 하더라도 홀로 남게 되는 피해아동을 어떻게 지원할 것이냐는 문제도 있다.
아동학대 문제 대응은 크게 '아동복지 체계'와 '형사사법 체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신고부터 조사, 사례관리는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지자체와 경찰,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이 담당하고 있고, 입건부터 보호처분과 형사처벌 등은 법무부가 담당한다.
<뉴스1>은 아동학대 문제와 관련해 형사사법체계 대응 전반을 총괄하고 있는 안성희 법무부 아동인권보호 특별추진단 팀장을 만나 아동학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법무부의 추진 과제 등을 짚어봤다.
◇정인이 사건 이후 즉각분리제 도입됐지만…"최선의 환경은 가정"
안 팀장은 정인이 사건 이후 도입된 피해아동 즉각분리제도나 처벌강화 등이 능사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가해부모가 분리 조치 되거나 실형을 선고받게 되는 경우 피해 아동에 대한 지원 문제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여성아동조사부에 근무하던 시절 맡았던 아동학대 사건 중 하나를 언급했다. 아버지가 고등학생 딸을 성폭행한 사건에서 범행을 부인해 딸이 법정 증언대까지 섰던 사건이었다.
당시 아버지 측 변호인으로부터 관심받고 싶어서 거짓말을 하는 것 아니냐는 공격적인 질문까지 받아야 했던 딸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빠, 밥은 잘 먹고 있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안 팀장은 "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한 사건이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세상에 하나뿐인 핏줄인 것"이라며 "(학대를 받더라도) 부모와 지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부모와 가정이 바뀌는 것이 아동학대를 위한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대를 받은 아이들은 시설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시설은 여러 한계 때문에 아이들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할 수 없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규율을 지켜야 하고 또래와 갈등도 생겨 좋아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실제 아동전문보호기관 등에 따르면 아동학대로 인해 분리조치된 아이들 중 연령이 높은 경우 오히려 시설에서 벌을 받는 것 같다는 등의 이유로 이탈을 하거나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피해아동이 머물 쉼터도 부족한 상황이다.
안 팀장은 "아이들에게 최선의 환경은 시설보다는 가정"이라며 "그 가정이 아이에게 지옥이 되지 않도록, 행복한 울타리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어른들이, 부모가 변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엄벌주의'보다 '부모교육'…"긍정적 양육 방법 교육해야"
안 팀장은 형량 강화 등 처벌수위를 높이는 것도 아동학대 예방에 도움이 되지만, 근본적으로는 부모들에 대한 교육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심각한 아동학대 가해자들도 시작은 보통의 부모가 매를 들 때와 같아요. 맞을만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한 대, 두 대씩 때리다가 점점 체벌 강도가 심해진 경우도 많고요. 아동학대인데, '훈육'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거에요."
안 팀장은 "아이를 훈육할 때 단순히 이것을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 어떻게 행동할지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쁜행동을 할 때 체벌하고 혼낼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훈육을 부모들에게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동학대의 출발 지점 중 하나인 체벌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법무부에서 추진했던 것 중 하나가 지난해 이뤄진 민법에서의 '징계권 조항' 삭제다.
안 팀장은 "민법상 징계권 조항이 아동학대 가해자들의 변명으로 이용되고 아동학대를 정당화하는데 악용된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징계권 폐지를 통해 체벌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것이 인식을 개선하고 아동학대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경제적이나 심리적으로 어려운 부모일 경우 양육을 위한 교육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위한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안 팀장의 생각이다.
안 팀장은 "부모들이 긍정적 양육 방법을 깨닫게 하고 배우게 함으로써 아이들이 최대한 될 수 있으면 가정 내에서 보호받으면서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최종목표"라고 덧붙였다.
◇법무부, 거버넌스 구축·대응주체 역량강화 등 투트랙 노력
"법무부 장관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아동인권 보호를 위한 특별기구를 만들어 한국 사회의 아동들이 인권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만들도록 하겠다."
지난해 1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취임 직전 정인이 사건을 언급하며 한 이야기다. 이후 박 장관 취임 직후인 지난해 2월 아동인권보호 특별추진단이 출범했다.
안 팀장은 지난 1년여간 추진단의 성과를 크게 Δ사건관리회의 활성화 등 거버넌스 구축과 Δ아동학대 대응주체의 역량강화라고 설명했다.
사건관리회의는 검사가 아동학대 사건에서 필요한 조치와 피해아동 지원 등을 위해 아동학대전담공무원, 경찰, 피해자지원센터 등 여러 전문가들을 모아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다.
법령에 근거해 이전부터 존재했던 회의지만 그간 실질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했다. 2020년 6건에 불과했던 사건관리회의는 지난해 3분기까지 40회가 넘게 열렸다.
안 팀장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아동학대 관련 일을 하는 여러 기관이 함께 협력하고 그들이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법무부는 서로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징검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응주체 역량강화 차원에선 지금까지 아동학대 전담검사와 전담공무원, 경찰 등 모두 468명을 대상으로 7회에 걸쳐 전문교육도 진행됐다.
법무부는 이와 별개로 학대 피해 아동을 부모로부터 완전히 격리하여 시설에서 생활하게 하는 대신에 검사의 요청으로 일정 시간 동안 아동센터 등에서 돌봄을 받도록 위탁하도록 하는 제도나, 수사과정에서도 전문가의 의견조회가 가능하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도 상반기 제출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다만 피해아동 지원이나 가해부모 교육 등 행정적인 영역은 법무부 소관 밖이다. 안 팀장은 "피해자 지원의 경우 기존에 있는 복지제도 등을 연결해 주는 정도가 법무부의 역할"이라며 "이런 일반적인 것들 외에 피해자 지원과 관련한 대책을 저희가 주력해서 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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