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서울=뉴스1) 김현 특파원,강민경 기자 =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가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있는 러시아군 병력 철수를 놓고 공방을 이어가는 등 불신의 골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러시아는 연이틀 병력 철수의 증거를 제시하고 나섰지만, 미국 등 서방은 오히려 러시아가 병력을 늘리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한 위장전술 가능성을 거론했다.
러시아는 전날에 이어 이날에도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된 병력을 철수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서부군관부와 남부군관부 소속 요원 중 훈련을 마친 이들을 원주둔지로 복귀시키고 있다는 보도문을 내고 관련 사진과 동영상까지 첨부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철수한 병력과 장비들은 현 위치에서 1000km 이동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전날에도 '크림반도에서 훈련을 마친 러시아군 부대들이 원주둔지로 복귀하고 있다'면서 군사장비를 실은 열차가 이동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그러나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의 병력 철수 주장에 대해 "어떤 군대도 철수하지 않고 있다"며 수일 내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대해 "매우 높다"며 "그들은 아직 어떤 군대도 철수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더 많은 병력을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이동시켰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그들이 (우크라이나로) 쳐들어가기 위한 위장술책 작전을 하고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를 갖고 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징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쳐들어가 공격할 준비가 됐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기와 관련해선 "제 감은 이것이 수일 내에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도 이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본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흑해에서 대비 태세를 강화하고 항공 지원 등에 나서는 것은 물론 혈액도 비축 중이라고 지적하면서 "짐을 싸서 집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면 확실히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역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전격 참석해 "우리 정보는 러시아 병력이 수일 내에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공격을 개시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시사한다"라고 말했다.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은 지난 48시간 동안 국경지대에서 러시아 병력이 오히려 7000명 늘어났다고 주장했고,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정상은 이날 비공식 회의를 열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 강력 제재를 가할 준비가 돼 있다며 러시아를 압박했다.
러시아는 미국 등 서방이 자신들의 병력 철수 증거 제시에도 불신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데 대해 강하게 비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그의 언사가 긴장감을 더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고, 세르게이 베르시닌 러시아 외무차관은 블링컨 장관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을 재차 제기한 데 대해 러시아 병력이 철수하고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블링컨 장관의 언급은) 유감스럽고 위험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측이 러시아의 병력 철수를 둘러싼 공방을 이어가면서 양측의 신경전도 거칠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러시아는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의 바트 고먼 부대사를 추방했다. 러시아가 고먼 부대사를 추방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주러 미국 대사관측은 러시아를 향해 "미국 외교관들을 부당하게 추방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며 이번 사건을 미국이 긴장 고조 행위로 보고 있으며, 대응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러시아는 미국측의 항의에 대해 이번 추방 조치와 관련해 러시아의 잘못은 없다고 강조하는 한편, 미국에서 러시아 외교관들에 대한 박해가 지속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는 "미국에서 러시아 외교관들에 대한 박해가 지속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보복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분쟁지역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져 긴장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은 이날 친러시아 반군의 통제 지역인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에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박격포 93발을 발사했다고 도네츠크주 인사를 인용해 보도했다. 전날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도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동부 루간스크주에 박격포와 수류탄 공격을 감행했다고 보도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즉각 이를 부인했다.
서방은 이같은 러시아 언론의 보도에 대해 러시아가 침공 명분을 위해 만든 가짜 뉴스라고 보고 있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날 유엔 안보리에서 러시아 정부 통제를 받는 언론이 가짜 정보를 퍼뜨리고 전쟁을 정당화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대중의 분노를 극대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접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휴전 상황을 감시하는 단체는 지난 16일부터 이날 오후까지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군 간의 전선에서 500여건의 폭발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감시단은 이날 오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 양쪽에 휴전 체제 준수를 촉구했다면서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즉시 긴장 완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양측은 외교적 해법을 도출하려는 시도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1월 미국 등 서방이 지난해 12월 자신들의 안보보장 요구안에 대한 답변서를 보내온 데 대한 재답변서를 이날 미국에 전달했다.
이번 재답변서에는 서방이 거부했던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배제를 포함한 나토의 동진 금지, 러시아 인근 옛 소련국가에 있는 군사자산 철수 등 기존 내용이 다시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든 대통령도 여전히 외교적 해법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외교적 해법 차원에서 블링컨 장관이 이날 유엔 안보리에서 연설하도록 하고, 지난 12일 자신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통화한 이유라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안보리 회의에서 외교가 위기를 책임감 있게 해결할 유일한 해법이라며 내주 러시아와 외교장관 회담을 제안하는 서한을 보낸 사실까지 공개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역시 러시아의 병력 철수나 긴장 완화의 신호는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도 대화와 외교적 해결을 재차 촉구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위기 해결을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을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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