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게재 순서
(1) "아파트 팔아서 재벌됐는데"… 중견 주택업체들에 드리운 '전운'
(2) 고분양가 논란 대방건설, 영업이익 '23%' 시행사 부채율 '5만%'
(3) "돈만 벌면 된다"… 무덤뷰 아파트에 살라니
"수년째 인플레이션으로 인건비와 자재비가 부담되던 상황인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후 원자재가격이 폭등했고 중대재해 규제에 따른 리스크 비용도 증가했습니다. 금리 인상으로 분양경기마저 나빠질 전망이어서 당분간은 주택사업을 못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옵니다." (중견건설업체 임원)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를 포함한 인프라 투자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규제 완화 등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건설업체들의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건설자재 가격 폭등과 수급 불안으로 공사 수익성이 저하되며 일부 현장은 중단됐고 앞으로 이 같은 문제는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특히 아파트 분양사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오던 주택업체의 경우 지난 수년 간 분양경기 호황의 수혜를 톡톡히 누렸지만 수익성 침체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자금조달비용 부담 커질 듯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시평) 10~20위권 건설업체 가운데 지역 주택사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들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10%대 안팎을 기록하며 상위 업체들보다 크게 높았다. 실제 ▲호반건설(13위) 16.7% ▲대방건설(15위) 19.5% ▲중흥토건(17위) 16.5% ▲계룡건설산업(18위) 9.1% 등으로 그룹 계열 대형사로 업계 선두인 ▲삼성물산(3.5%) ▲현대건설(4.2%) ▲GS건설(7.2%) 등보다 4~5배 가량 높았다.주택사업 비중이 높은 중견건설업체의 경우엔 분양경기에 따라 수익성 격차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채비율이 높았던 벽산건설·남광토건·우림건설·쌍용건설·이수건설·금호산업 등 10개 이상 건설업체가 워크아웃(재무구조개선작업)을 밟고 일부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돌입했다.
중견건설업체의 매출 대비 분양수익 비중을 보면 호반건설(58.8%) 대방건설(93.0%) 중흥토건(73.6%) 계룡건설산업(12.5%) 등이다. 업계 1위인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전체 수주 가운데 주택사업 비중은 11.1%다. 현대건설과 GS건설의 주택사업 비중은 각각 48.6%, 56.0%이지만 두 회사의 자체 분양사업 비중은 4.8%, 8.7%로 낮다.
부동산개발업은 자기자본이나 대출을 이용해 토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지은 후 분양해 수익을 얻는다. 이때 대규모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일으키기 때문에 금리 변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 연준(Fed)이 연쇄적인 금리 인상을 시사하며 건설업체의 주요 자금조달수단인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 금리도 한 달 만에 0.5%포인트 오르는 사례가 나타났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ABSTB 차환 금리가 한 달 만에 0.4~0.5%포인트 오른 2.7~2.8%대를 기록했다. ABSTB는 통상 만기가 3개월가량으로 짧아 조달 금리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건설업체의 PF 기업어음(ABCP)과 전자단기사채(ABSTB) 규모는 9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한국기업평가가 신용등급 'BBB-' 이상 24개 건설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만기 시 차환 위험을 직접 부담하는 PF ABCP 등의 익스포저(위험) 규모는 총 9조4000억원이었다.
다만 조사 대상 건설업체의 지난해 9월 말 현금성자산은 총 24조7000억원으로 대응 가능한 수준이란 게 한기평의 분석이다. 신용등급이 낮거나 자금조달 규모가 큰 건설업체일수록 차환 위험이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파트 사업 계속해야 하나"
철근, 콘크리트 등 자재가격 상승으로 건설 원가가 오르면서 공사 지연이 발생하거나, 올 1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시행됨에 따라 많은 건설업체가 리스크 담당 임원을 고용하는 등 각종 비용도 증가했다.부동산정보플랫폼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5월 20일까지 서울에서 분양된 공동주택수는 총 3390가구로 연초 계획인 1만4447가구의 23.5%에 그쳤다. 원자재가격 상승 등 주택사업을 둘러싼 환경 조건이 나빠지며 이를 벗어나려는 건설업체의 움직임도 늘고 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금리 인상 등 대외적인 환경 변화로 기업이 스스로 대응하기가 어렵다 보니 주택사업에만 의존해선 살아남을 수 없다는 분위기"라며 "리스크가 커진 주택사업 비중을 줄이고 에너지·데이터 등 비주택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변화하려는 움직임이 많다"고 전했다.
KB증권에 따르면 시평 기준 7대 건설기업인 삼성물산·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 포함)·GS건설·포스코건설·대우건설·롯데건설·DL이앤씨의 국내 주택시장 점유율은 2020년 30%대에서 지난해 30% 미만으로 감소했다. 중견건설업체의 주요 거점인 지방 분양경기마저 침체한 상황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4월 지방 미분양 주택수는 2만4210건으로 지난해 4월보다 70% 증가했다. 전국에서 미분양 주택수와 증가율이 가장 큰 대구는 올들어 지난 5월까지 분양한 아파트 10곳 모두 미분양됐다.
분양 실적은 다시 건설업체의 유동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PF 대출로 공사비를 충당한 후 분양수익이 들어오면 현금으로 정산받는 주택업체들은 분양 실적이 저조할 경우 돈을 받지 못해 유동성이 나빠지고 나아가 신규 수주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대한주택건설협회는 최근 국토교통부에 사업 리스크 완화를 위한 ▲개발부담금 50% 감면 ▲분양보증 수수료 50~70% 인하 ▲준공 후 등기 수수료 및 법인세 인하 ▲기본형건축비 수시 고시 및 표준형건축비 현실화 등을 건의했다. 개발부담금은 현재 개발이익의 최대 25%를 납부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은 1998~2001년 2차례에 걸쳐 개발부담금을 한시적으로 면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