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 그린닥터스 이사장(온종합병원그룹 이사장)이 지난 14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의료봉사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이채열 기자

"피란길에 나섰던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전쟁으로 흩어진 아버지, 남편 등을 만나기 위해 다시 조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임시 출입국관리소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로 가는 도로에는 차량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의료지원을 위해 폴란드-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을 다녀온 (재)그린닥터스 정근 이사장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상황을 이와 같이 전했다.


지난 5월 12일부터 8박 9일간 폴란드-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서 긴급 의료지원 활동을 펼치고 귀국한 부산 지역 봉사단체인 그린닥터스.

세계적인 긴급 의료구호단체로 잘 알려진 그린닥터스는 국제적 재난지역과 국가재해나 대형 인명사고 등 응급의료 구축체계가 시급히 필요함에도 의료시설이 부족한 곳에 의료인을 긴급 파견해 구제 활동 사업을 펼치는 민간 단체이다.

특히, 2004년에 정식 창단된 그린닥터스는 2005년에 국내 최초로 개성공단에 남북협력병원을 개원해 화제를 모으면서, 긴급 의료구호단체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2016년 개성공단 가동이 전면 중지되면서, 남북협력병원도 함께 중단됐다.


그럼에도 그린닥터스의 해외 봉사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그 난민 속으로 '청진기와 의료품, 구호품'을 들고, "밝음과 순수, 평화"를 상징하는 대한민국 '태극기'의 정신을 전하고, 자긍심을 높였다.

1997년 부산지역 의사 10여 명의 무료 진료로 시작된 그린닥터스. 지금 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지만, 의료인, 대학생, 청년 등 자원봉사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대한민국'을 알리고 있다.

지난 14일 본지는 '청진기를 든 외교관'이라는 별명이 붙은 그린닥터스 정근 이사장을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그리고 그동안 펼쳐온 봉사활동 등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난 5월 12일 우크라이나-폴란드 국경지역 현지에서 그린닥터스 긴급의료지원단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그린닥터스

-"한국은 없고, 일본은 있었다. 태극기, 한국을 알렸다"...난민 대부분 '두통'과 '우울증' 증상 보여

우선, 지난 5월, 8박 9일 동안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국경 지역에서 펼친 긴급 의료지원 봉사활동 당시 현장 분위기에 대해 정근 이사장은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국경 지역에 한국은 없었다. 태극기도 없고, 한국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일본은 있었다. 일본은 있는데 우리나라는 왜 없지? 라는 의문부터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태극기를 가슴에 달았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태극기, 한국을 알아보더라. 그리고 '고맙다. 감사하다'라는 말을 하면서 우리를 반겨줬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전쟁 등에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바로 의사다. 그리고 약이 필요하다. 그렇게 진료를 시작하고 약을 처방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대한민국, 감사하다'라는 인사를 전했는데, 그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라고 하면서, "우리나라도 전쟁이라는 아픔을 겪었고, 그당시에 우리나라도 세계 각국으로부터 의료지원을 받았다. 우리는 이제 선진국이다. 다른 나라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우리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가가 외교상 여러 이유로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 국민이라도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가 태극기를 들고, '코리아'가 왔노라 하고 외쳤다"라며 의료지원 동기를 밝혔다.

그러면서 정근 이사장은 당시, 난민들의 상태에 대해서도 현지 상황을 전했다. 그는 "진료실을 찾아온 난민들은 주로 두통을 호소했다. 어깨는 잔뜩 뭉쳐져 있었고, 불편한 임시시설에서 오래 생활한 탓인지 목이 많이 아프다며 물리치료를 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전쟁 스트레스가 심한 듯했다. 한 중년 남자는 먼 거리를 이동하는 피란 중에 다리를 다쳐 엄청나게 부어 있는데도 제때 치료를 못 한 채 방치돼 있었다"라고 말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몹시 우울한 상태였다. 우울증 원인은 형제나 아버지 등 가족들이 여전히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터라, 거기에서 공포와 불안감이 생긴 것 같다"라고 난민들의 상황을 전했다.

또한 그는 "그린닥터스가 준비해간 가정상비약이 들어 있는 응급의료키트와 간식을 받으려고 아이들이 나이 어린 순으로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간식을 하나씩 받아들자마자 기쁨에 환호성을 터뜨리는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전쟁의 트라우마는 잠시나마 사라진 듯했다. 과자를 받아든 아이들은 연신 그린닥터스 대원들에게 고개 숙이면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곁에서 선물을 받아든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의 얼굴에서도 모처럼 수심이 사라지고 미소가 보였다.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정근 이사장이 현지 난민 어린이들과 소통하는 모습./사진=그린닥터스

-우크라이나 전쟁 후, 의료시설 재건 모색...한-우 양국 협력방안 모색


한편 그린닥터스의 '우크라이나 난민 의료지원단' 일행은 5월 13일 저녁 폴란드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우크라이나 대사 등을 접견하고 '한국-우크라이나 전쟁 후 의료시설 복구 협력방안'을 모색했다.

그 일환으로 지난 7월 8일 우크라이나 의회 대표단이 부산을 방문했다.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부산 상공인 등을 만나 러시아와 전쟁 중인 자국에 대한 의료지원과 전후 재건 문제를 의논했다. 그자리에서 그린닥터스 재단은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우크라이나 상황을 설명하고 지원을 재차 당부했다. 이어 그린닥터스와 온병원그룹 등이 자선 바자로 모금한 우크라이나 지원 성금 2천200만 원과 심전도기를 사절단에 전달했다.

정근 이사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는대로 그린닥터스는 사단법인 부산 의료발전협회 등과 함께 또다시 대규모 의료지원단을 꾸려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긴급 의료지원은 물론 러시아의 폭격으로 파괴된 의료시설 재건에 참여하고, 의료 버스를 지원하는 문제 등을 우크라이나 정부나 관련 NGO 등과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정근 이사장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의료지원을 하면서, "중단된 개성공단 병원에 대해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고 말하면서 "개성공단 남북협력병원이 반드시 재개원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명 의식으로 시작된 것이 바로, 개성공단 남북협력병원이었다. 부산의 의사들이 뭉쳐서 해보자고 한 것이 바로 남북 최초의 의료협력이었고, 최초의 병원이었다. 최초라는 단어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북이 협력해서 병원을 운영하는 역사를 만들어냈지만, 어느 순간에 문이 닫혀 버려 참 허망하다. 재개원하는 날이 다시 오기를 희망하고 있다"며 정부에 개성공단 재가동을 기대했다.

(재)그린닥터스는 부산시 부산진구 당감동에 있는 보건복지부 소속의 국내외 의료봉사 단체로서, 1997년부터 매년 시행되는 국내 활동으로는 부산의 의료 취약지역 의료 봉사, 대북 의료지원 사업, 외국인 근로자 및 다문화 가정 의료봉사, 새터민 의료봉사 등을 전개하고 있다. 또 2002년부터 시작된 해외 의료 봉사활동은 실크 로드 의료 대장정, 고구려 의료 대장정, 해양 실크 로드 의료 대장정 등 다양한 주제별 봉사활동과 대지진 발생 지역이나 사이클론(cyclone) 피해 지역 등 아시아권과 아프리카까지의 세계 각지로 봉사단을 파견해 긴급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