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은 4개의 알파벳으로 '나'를 정의하는 MBTI에 푹 빠졌다. MBTI의 폭발적인 인기에 젊은 세대들은 이를 문화로 간주하며 즐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MBTI가 뭐예요?"

사람들은 트렌드에 민감하다. 트렌드를 따라가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트렌드는 무엇일까.


한국은 4개의 알파벳으로 '나'를 정의하는 MBTI에 열광하고 있다. 개인의 적성을 파악하는 도구로 사용됐던 MBTI는 젊은 세대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이에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MBTI가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초면인 사람과 MBTI를 놓고 대화하면 순식간에 친해질 수 있어 어색함을 푸는 대화의 주제로도 등극했다.

MBTI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나'에 대한 답변을 빈번히 요구받는 환경 탓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람과 소통할 기회가 줄어들고 취업 전쟁과 경직된 기업문화를 겪은 MZ세대들이 심리적인 안정을 줄 유형의 사람을 찾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사람을 유형화해 스스로 안정감을 찾는 것이다.

"소개팅할 때도 따져봐요"… MBTI에 푹 빠진 MZ세대

MZ세대는 모르는 사람과 처음 인사할 때 MBTI를 물어보고 데이트 상대를 고를 때도 MBTI를 고려한다. 사진은 MBTI별 연애관 뽑기 게임기 앞에 줄을 선 사람들. /사진=CNN 홈페이지

최근 CNN은 '제2차 세계대전의 성격 검사와 사랑에 빠진 한국'이라며 한국의 MBTI 열풍을 보도했다. 특히 MZ세대가 MBTI에 가장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CNN에 따르면 한국의 MZ세대는 첫인사는 물론 데이트 상대를 찾을 때도 MBTI를 활용한다.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과 잘 맞는 MBTI 유형의 상대를 골라 만난다는 것.

대학생 A씨(여·23)는 "소개팅 제의를 받을 때 MBTI를 반드시 물어본다"고 밝혔다. 그는 "상대방을 알아가는 데 큰 시간을 소요하지 않아도 된다"며 "대체로 어떤 성격인지 짐작이 되니까 맞을 것 같은 사람은 만나고 아닐 것 같은 사람은 안 만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학생 B씨(남·23) 역시 MBTI에 푹 빠졌다. 그는 "대화를 조금만 나눠도 어떤 유형인지 가늠되는 것을 보면 MBTI는 과학"이라며 "MBTI로 사람을 여러 번 만나본 결과 실패한 경우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여기에도 응용돼?"… 다양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는 MBTI

기업들도 MBTI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다. 제품뿐만 아니라 채용 공고에도 MBTI가 등장한다. 사진은 MBTI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 제품들. /사진=제주맥주, 카카오메이커스, 텐바이텐

MBTI를 향한 관심이 뜨거워지자 기업들도 MBTI에 초점을 맞췄다. 실패 위험 요소를 줄이기 위한 수단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관심 요소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기업의 MBTI 활용은 20~30대 채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신입사원을 구하는 기업의 취업 공고에는 특정 MBTI 유형의 구직자를 찾는다는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예컨대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고 상상력이 풍부한 ENTJ 유형의 지원자를 찾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고 상황대처에 유연한 ISFP를 구합니다' 등 대놓고 특정 유형을 명시하는 식이다.

기업의 MBTI 활용은 취업 공고뿐만 아니라 마케팅에서도 드러난다. 결혼회사는 MBTI 유형을 조사한 뒤 어울리는 남녀를 매칭해주고 데이트 코스를 직접 짜준다. 관광회사는 MBTI 유형별로 어울리는 여행지를 추천하고 유형별로 한 팀을 구성해준다. 나아가 각 유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영문 알파벳을 새긴 제품(맥주·티셔츠·휴대폰 케이스 등)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의류회사 S패션 관계자는 "매장 구역을 각 MBTI 유형별로 나눠 그들의 취향에 맞는 의류를 모아둘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코너별로 적합한 유형의 직원을 배치할 것"이라며 "고객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저 사람은 이런 성격일 거야"… MBTI 맹신은 금물

최근 고객의 MBTI에 따라 매장 직원을 매칭하는 기업이 늘어났다. 향수 브랜드 러쉬가 대표적이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러쉬 매장. /사진=러쉬 홈페이지

최근 고객의 MBTI에 따라 매장 직원을 매칭하는 기업이 증가했다는 소식에 머니S가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향수 브랜드 러쉬 매장을 찾았다. 고객을 격하게 환영한다는 러쉬답게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환호와 인사 세례를 받았다. 각오하고 방문했지만 I유형인 기자에게는 다소 어색했다.

주춤거리는 기자에게 한 직원이 MBTI가 무엇인지 물었다. 기자가 "ISFJ다. I유형이라 낯을 많이 가린다"고 답하자 직원은 "I유형 고객님 담당할 OOO"이라며 다른 직원을 호출했다. 이에 비교적 텐션이 낮은 직원이 기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다. 기자가 "러쉬는 찾아오는 고객에게 MBTI를 자주 물어보나"라고 묻자 직원은 "대체로 물어보는 편"이라고 답했다.

이같이 MBTI가 하나의 트렌드로 등극한 상황에서 MBTI가 신뢰성을 담보하는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현재 상담전문가로 활동하는 김선희 교수는 "검증되지 않고 실제 검사의 공식 문항과 일치하는 문항이 한 개도 없는 검사지가 대부분"이라며 "이는 참가자의 상황과 기분에 따라 검사 결과가 바뀔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다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성격을 몇 개의 틀로 가둬버린다"며 MBTI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MBTI로 누군가를 규정하고 자기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등 과하게 몰입하는 사람들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MBTI로 은연중에 사람을 판단하고 단정 짓는 일이 지속되면 스스로 편견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MBTI로 사람의 성격을 규정하는 게 습관이 되면 색안경을 낀 채 누군가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알파벳 4글자로 정체성을 규정하면 그 틀에 갇혀 자신의 가능성과 능력을 제한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자신을 파악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MBTI를 가볍게 즐기면 건강하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