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게재 순서
① 수요 얼어붙은 반도체업계… 언제 좋아질까
② 삼성이 쏘아 올린 '반도체 치킨게임'… 경쟁사 잡을까
③ 반도체 불황에 수출 '비상'… "속도감 있는 정책 시행 필요"
① 수요 얼어붙은 반도체업계… 언제 좋아질까
② 삼성이 쏘아 올린 '반도체 치킨게임'… 경쟁사 잡을까
③ 반도체 불황에 수출 '비상'… "속도감 있는 정책 시행 필요"
삼성전자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 침체 속에서도 인위적인 감산과 투자 축소는 없다고 공언했다. 국내·외 주요 메모리 제조사들이 잇따라 감산과 축소를 발표한 것과는 대조되는 행보다. 전 세계 메모리 시장에서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는 삼성전자가 홀로 공격적인 목표를 설정함에 따라 반도체 치킨게임이 재연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 나홀로 "감산·투자 축소 없다"
삼성전자는 최근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메모리 반도체 투자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10월 초 미국에서 열린 테크데이 행사에서 '인위적인 감산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힌 부분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시장 수요가 현시점에서 위축된 것은 맞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수요 회복에 대비할 필요가 있어 단기적으로 수급 균형을 위한 인위적인 감산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투자에 대해서도 "중장기적 수요 대응을 위한 인프라 투자는 기존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라며 "업황과 연계해 설비 투자는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기조는 그대로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다른 메모리 제조사들의 대응과는 정반대 행보다. 올 하반기 들어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경기침체 장기화로 스마트폰·컴퓨터·TV 등 세트 소비가 줄었고 기업용 서버 수요도 꺾이면서 메모리 주문량이 감소하고 가격은 떨어졌다. 메모리 업계의 3분기 실적이 '어닝 쇼크' 수준으로 급감하자 주요 업체들은 감산과 투자 축소를 결정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량을 줄이고 일정 기간 동안 투자 축소와 감산 기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내년 투자규모도 올해 대비 50% 이상 줄일 방침이다. 미국 마이크론도 올 하반기 생산량을 줄이고 반도체 장비 투자 예산을 30% 삭감하기로 했다. 일본 키옥시아도 지난달부터 반도체 칩 생산을 위한 웨이퍼 투입량을 30% 줄였다.
삼성전자가 감산과 투자 축소는 없다고 공언한 바탕에는 시장 1위로서의 자신감이 있다는 관측이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기준 전 세계 D램 시장에서 43.4%, 낸드 플래시 시장에서 33.3%의 점유율로 압도적인 1위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신산업실 전문연구원은 "과거에도 메모리 시장 불황이 왔을 때 삼성은 유일하게 생산과 투자를 지속했고 이후 업황 회복 시점에서 손실을 빠르게 보전하며 시장 1위 입지를 강화할 수 있었다"면서 "이번 생산·투자 지속 선언도 과거 성공 사례를 통한 전략적인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메모리 시장 1위인 삼성전자가 홀로 공격적인 대응을 이어가기로 결정하면서 '치킨게임'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불거진다. 치킨게임은 피해를 감수한 극단적인 경쟁을 가리키는 용어다. 다른 제조사들이 삼성전자에 시장 파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출혈 경쟁을 감수할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치킨게임 재연?… 전문가 "우려 과도"
앞서 메모리 시장에서 두 차례 치킨게임이 벌어진 전례가 있다. 2007년 대만 D램 업체들이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제품생산을 늘리자 글로벌 제조사들도 이에 맞서 가격 인하에 나섰다. 당시 주력 512Mb(메가비트) D램 가격은 6.8달러에서 0.5달러까지 떨어졌고 시장 점유율 2위였던 독일 D램 제조사 키몬다는 결국 출혈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2009년 파산했다.2010년에도 대만 업체가 생산량과 투자를 늘리자 일본 기업들이 맞대응에 나서면서 또다시 치킨게임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당시 D램 3위 기업인 일본 엘피다가 무너지면서 경영권을 미국 마이크론에 넘겨야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엔 예전과 같은 치킨게임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 D램 시장은 과거 두 차례의 치킨게임을 거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빅3' 체제로 개편됐다. 비슷한 규모의 기업이 많으면 출혈 경쟁이 심화하지만 현재는 규모의 경제를 갖춘 기업 세 곳이 D램 시장을 삼분하고 있고 각 사의 상황에 맞는 최적의 전략을 택하고 있다.
김양팽 연구원은 "치킨게임은 기본적으로 상호 경쟁하는 과정에서 무리한 출혈이 일어나는 것인데 이미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감산과 투자 축소를 발표해 상호 경쟁 구도로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며 "삼성전자 역시 업계 생태계가 흔들릴 만큼 무리한 투자를 하는 게 아니라 기존에 계획한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것이어서 치킨게임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진단했다.
D램과 달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외에 미국 웨스턴디지털, 일본 키옥시아, 중국 YMTC 등 6개 업체가 경쟁하고 있는 낸드 플래시 시장도 일정 부분 경쟁이 일어날 수 있겠지만 치킨게임으로 보긴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제재로 자연스럽게 도태될 중국 YMTC를 제외하면 낸드 과점화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며 "공급사들이 수익성을 포기해 가면서 치킨게임을 시작할 이유가 없어 시장의 우려는 과하다고 판단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공급사들이 내년 매우 보수적인 수요 예측에 맞춰 공급을 조절하고 있기 때문에 거시경제 불확실성에 따른 수요 하락 리스크는 메모리 반도체가 가장 적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