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관 동행미디어 시대 주필

2주 전 '검사의 존재 이유, 밑바닥서 다시 찾아야'라는 칼럼을 쓴 뒤 몇몇 지인들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길지 않은 글이었지만 곱씹을 지점은 적지 않았다.

검사 출신의 한 원로 법조인은 "니체는 태양은 서쪽으로 져야 동쪽에서 떠오를 수 있다고 하면서 몰락에 큰 의미를 부여했지요! 검찰은 다시 떠오르기 위해서 몰락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얼마 전까지 검찰 고위직을 지낸 다른 인사의 반응은 결이 좀 달랐다. "썰물이 되어 바닷물이 모두 빠져야, 바다 밑이 명확히 드러나 보인다"면서도 "다만, 미련을 갖고 보완수사권을 쥐려는 게 아니라 사법 현실이 어떻게 망가질지 훤히 보이기 때문에 아예 놓기가 어려울 뿐"이라는 것이었다.
정부 고위직 출신의 또 다른 인사는 "(검찰의) 업보"라며 "다만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힘들어지겠지…"라고 했다.


세 사람의 메시지는 결론보다 질문을 남긴다. 지금 추진되는 검찰 개혁, 수사·기소 분리를 내세운 개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검사들이 느끼는 모멸감과 자괴감의 상당 부분은 자업자득이라고 했다. 일부 '문제적 검사'들이 정권을 거치며 축적해온 권력의 그림자가 지금의 불신을 만들었다는 뜻이었다. 보완수사권에 대해서는 차라리 그것까지 내려놓아야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단절'이 제대로 설계된 제도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그리고 마지막에 "검찰을 무너뜨리는 것은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는 미련일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미련'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단지 기득권의 일부라도 놓지 않으려는 '집착'으로만 읽히지 않을까 우려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취지는 아니었다. 실제 현장에서는 그보다 훨씬 복합적인 감정이 작동한다. 기존 권한을 모두 잃는 데 대한 자조와 불안, 권한을 내려놓았을 때 생길 수 있는 공백에 대한 우려와 책임감 등이 뒤섞여 있다. 그 점에서 "아예 놓기가 어려울 뿐"이라는 전직 고위 검사의 말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일정 부분 사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검찰의 기류를 보면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지금의 선택들이 오로지 그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겸손 없는 실력은 오만이고, 실력 없는 겸손은 비굴"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검찰이라는 조직이 기대받아 온 것은 실력과 겸손, 이 둘의 균형이었다. 그런데 최근의 모습은 오만도, 비굴도 아닌 듯하다. 무엇보다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조직적 고민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검사들은 "보완수사권이고 뭐가 다 가져가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어떤 검사들은 "권한도 없는데 무슨 책임감이냐"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조용히 사람이 빠지고 있다고 한다. 검찰을 떠나는 검사가 10년 내 최대치라거나, 15년 차 이상 허리급 인력들이 그중 절반 이상이라는 소식이 전해진다.

물론 작금의 상황에 대한 불만과 조직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개인의 선택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왜 떠나는지에 대한 내부의 질문,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성찰이 충분히 보이지 않을 때 그 이탈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회피의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는 조직 전반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자신들은 언제든 떠나도 괜찮다는 생각", "어디서든 통할 것이라는 자신감 아니겠나"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의 책임도 분명하다. 수사·기소 분리,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설치 입법, 사법 3법이 짧은 시간에 중첩되며 추진됐다. 권한 구조는 빠르게 바뀌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책임 체계와 협업 시스템은 충분히 설계되지 못했다. 경찰에 수사권이 집중되는 상황에 대한 불안, 상호 견제 장치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다.

검사 집단은 성찰이 부족했고, 정치는 제도에 대한 숙의가 부족했다. 그 사이에서 형사사법 시스템은 흔들리고 있다. 수사 부실이나 지연의 대가는 결국 국민 몫이다. 특히 힘없는 이들이 먼저 체감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힘 있는 사람들은 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권력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검사 집단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모멸감과 자괴감에 머물러 있는가, 아니면 그 위에서 책임을 재구성하려 하고 있는가. 이도 저도 아닌 비분강개에 머물러 있는 건가. 모멸감과 자괴감은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지만, 그것이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앞서 원로 법조인이 말한 '몰락'의 의미를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해체나 붕괴가 아니라 처절한 성찰, 이를 통해 다시 진정한 존재 이유를 만들어가겠다는 집단 의지를 요구하는 말일 것이다. 권한을 어디까지 내려놓느냐의 문제는 중요한 이슈지만 본질은 아니다. 권한을 어떻게 내려놓고, 그 이후 어떤 책임을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겸손한 태도, 그것이야말로 많은 국민이 예리하게 지켜보는 판단 지점일 것이다.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와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소명의식 사이에서, 검사 집단이 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