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봉 은행법학회 회장이 생산적 금융의 본질을 '미래가치의 현재화'로 규정하면서 비상장 단계부터 상장(엑시트)까지 이어지는 혁신금융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은행법학회·한국은행 공동 춘계학술대회에서 '생산적 금융을 위한 경제적·법적 쟁점과 과제' 발표를 통해 "혁신금융의 핵심은 연구개발(R&D) 금융"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현재 한국 경제가 새로운 전환점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내생적 성장 이론 관점에서 지식자본이 성장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는 '세 번째 성장 모멘텀' 국면에 진입했지만, 동시에 성장률 둔화와 불평등 심화라는 구조적 한계에도 직면했다는 분석이다.
김 회장은 "1987년 이후 민주주의 확대를 기반으로 한 성장 모멘텀이 경제 도약을 이끌었지만, 최근에는 모방성장의 한계로 성장률이 지속 하락하고 있다"며 "소득과 자산 불평등 문제 역시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는 ▲기술 선도 성장 ▲포용 기반 '모두의 성장'을 제시했다. 그는 "지식자본을 성장의 직접 요소로 만드는 동시에, 포용과 공정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생산적 금융·포용금융·공정금융의 결합"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은 미래 가치를 현재의 구매력으로 전환하는 기능"
특히 금융의 역할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요제프 슘페터의 이론을 인용하며 "금융은 단순한 자금 중개가 아니라 미래 가치를 현재의 구매력으로 전환하는 기능"이라며 "혁신금융은 현재 담보가 아니라 미래 가능성을 기준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혁신금융이 직면한 구조적 한계로 ▲극도의 불확실성 ▲긴 투자 회수 기간 ▲정보 비대칭을 꼽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장치로 '개념검증(Proof of Concept)'을 제시했다.
김 회장은 "될 법한 기술인지에 대한 초기 검증이 있어야 민간 자금이 유입된다"며 "선진국은 이를 국가의 책무로 보고 공적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영국의 고등연구발명국(ARIA) 등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반면, 한국은 공적 개념검증 체계와 정보 인프라가 부족해 혁신금융 생태계 형성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벤처기업 공시 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기관투자자의 참여가 제한되고 있다"며 "등록 벤처기업 비중이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벤처대출 등 투자성 금융 수단의 부재도 문제로 제기됐다. 김 회장은 실리콘밸리 은행(SVB) 사례를 언급하며 "지분 희석 없이 성장을 지원하는 투자성 대출은 스케일업 단계에서 필수적인 자금 공급 수단"이라며 "국내에서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SVB 파산 이후 논의된 '투자성 예금' 개념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는 예금 일부를 투자 성격으로 전환해 손실 흡수력을 높이는 구조로, 기존 코코본드보다 시장 충격을 줄이면서 금융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회장은 혁신금융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과제로 ▲ARPA형 공적 개념검증 기관 설립 ▲벤처기업 주식 등록 의무화 ▲기관투자자 참여 확대 ▲벤처대출 및 신주인수권 규제 개선 ▲스타트업 M&A 제도 정비 ▲투자성 예금 도입 등을 제시했다.
그는 "혁신은 개별 기업이 아니라 생태계에서 나온다"며 "프리시드부터 엑시트까지 단절 없이 이어지는 금융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은 아직 혁신금융의 'A부터 Z까지' 이어지는 구조가 부족한 상태"라며 "법·제도 전반을 재설계해 금융이 미래 가치를 실현하는 핵심 인프라로 기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