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앞서 조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과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사진=뉴스1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새 대법관 후보자를 임명 제청하면서 관례로 이어져 온 대면 제청 대신 서면 통보를 한 사실이 알려져 파장이 커지고 있다. 대법원은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임명 제청했다. 김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청와대와 사전 조율이 이뤄졌지만 손 부장판사를 놓고는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제청이 강행됐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뒤 누적돼 온 조 대법원장과 여권의 갈등이 이른바 '서면 제청'을 계기로 정점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청와대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고, 더불어민주당에선 조 대법원장 탄핵 주장까지 나왔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19일 부산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조 대법원장을 향해 "퇴학시켜 달라고 구걸하는 불량 학생의 태도"라며 사퇴를 요구했다. "해방 이후 최악의 대법원장 조희대씨"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면서 당 차원의 대대적인 '사법 개혁'도 예고했다. 서영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역시 "탄핵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노경필 법원행정차장은 이날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청와대에 만남을) 요구했는데 안됐다"고 해명했지만, 사태 진화에는 역부족이었다.



앞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월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김민기 서울고법 판사와 손봉기 부장판사 등 4명을 조 대법원장에게 추천했다. 청와대는 김 판사를 선호했지만, 조 대법원장은 김 판사의 배우자가 현직 헌법재판관이라는 점 등을 들어 난색을 보였다고 한다. 노 전 대법관이 3월 퇴임했지만 양 측은 이후 몇개월째 의견 조율에 실패했고, 그 여파로 대법관 공석 사태가 장기화했다. 그러다 조 대법원장이 9월 퇴임하는 이 대법관의 후임과 노 전 대법관 후임을 동시에 서면 제청한 것이다.

헌법 104조 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 국회의 동의권이 서로 견제하고 보완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사전 조율이 관례로 자리잡은 것도 원활한 인선을 위한 현실적 필요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일련의 상황은 심히 유감이다. 대법관 인선은 특정 후보를 관철하거나 배제하는 정치적 승부가 아니다. 어느 한쪽도 자신의 권한만을 앞세워 상대를 압박하거나 인선을 힘겨루기의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인물을 대법관으로 세울 것인가다. 법률적 역량과 경륜, 청렴성은 기본이고 국민의 다양한 삶과 가치관을 재판에 충실히 반영할 수 있는 다양성도 폭넓게 고려해야 한다.

조 대법원장은 왜 제청을 장기간 미뤘는지, 서면 제청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는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법부 독립을 앞세워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한다는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여당 대표가 듣기에도 민망한 언어로 사법부 수장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탄핵까지 거론하는 것도 도를 넘었다. 사법 개혁을 대법원장 압박이나 보복의 수단처럼 몰아가는 것은 사법부 독립을 훼손할 뿐이다. 조 대법원장과 여권 모두 힘겨루기를 거두고 헌법이 부여한 각자의 권한을 절제 있게 행사해야 한다. 최고법원의 공백으로 생기는 피해는 결국 재판을 기다리는 국민에게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