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왼쪽)와 이해진 네이버 의장. /그래픽=챗GPT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창업주)이 자신보다 많은 네이버 지분을 엔비디아에 넘겨주기로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네이버 총수임에도 4대 주주로 물러났다. 평소 지배력 유지보다 회사의 체질 개선에 중점을 두는 이 의장 특유의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네이버는 최근 엔비디아를 대상으로 1조4809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엔비디아는 주당 20만4500원에 보통주 724만1564주를 취득한다. 납입일은 오는 10월30일이며 신주 상장 예정일은 11월20일이다.


오는 8월3일 예정된 자사주 490만1094주 소각까지 반영하면 엔비디아의 지분율은 약 4.5%가 된다. 국민연금공단(약 9.2%)과 블랙록(약 6.12%)에 이어 네이버의 3대 주주에 오르는 것이다. 이 의장이 보유한 네이버 주식은 612만9725주로 지분율은 약 3.8%다.

창업자 개인보다 많은 지분을 외부 기업에 배정하는 것은 통상 경영권 불안 요인이 될 수 있지만 네이버가 엔비디아에 4.5%의 지분을 배정한 것은 개인 지분 유지보다 AI 사업의 성장 기반 확보가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나선 것은 22년 만이며 2008년 코스피 이전 상장 이후 처음이다.

이 의장의 네이버 지분은 창업 초기 12%대였지만 외부 투자 유치와 한게임·서치솔루션 등과의 합병, 사업 확장 과정에서 꾸준히 낮아졌다. 대신 네이버는 지분을 활용해 사업 동맹을 구축해왔다.


2017년 미래에셋과 지분을 교환해 핀테크 협력 기반을 마련했다. 2020년에는 CJ ENM·스튜디오드래곤·CJ대한통운과 총 6000억원 규모의 상호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물류와 콘텐츠, 커머스 역량을 네이버 생태계에 연결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최근에는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의 포괄적 주식교환을 결정하며 핀테크와 가상자산을 결합한 디지털 금융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 지분을 독점하기보다 유력 사업자와 자본 관계를 맺어 생태계를 확장하는 네이버식 성장 전략이다.

엔비디아와의 자본 제휴도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네이버는 엔비디아의 GPU·AI 인프라 역량과 글로벌 대체자산 운용사 브룩필드의 자금 조달 역량을 결합해 기가와트(GW)급 글로벌 AI팩토리 구축을 추진한다. 포털과 광고 중심의 인터넷 기업에서 AI 인프라·클라우드 사업자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기 위한 승부수다.

이 의장은 과거부터 개인의 지배력을 키우기보다 네이버를 장기적인 생태계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경영 철학을 보여왔다. 지난해 3월 사내이사와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한 이후에는 두나무와의 결합과 엔비디아 투자 유치 등 대규모 자본 동맹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낮은 개인 지분에도 지배구조가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점도 과감한 결단의 배경으로 꼽힌다. 국민연금과 블랙록은 네이버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전략적 주주라기보다 투자 수익을 중시하는 기관투자자에 가깝다. 미래에셋과 CJ 계열사 등 네이버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도 사업 관계로 연결된 전략적 파트너다.

총수 일가의 직접 지분이 낮아 사익편취 규제 부담도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총수 일가가 지분 20% 이상을 보유한 회사와 해당 회사가 지분 50%를 초과해 보유한 자회사를 규제 대상으로 삼는다. 네이버 계열사 가운데 규제 대상은 이 의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개인회사 '지음'이 유일하다. 동생 이해영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데 지음이 계열사 거래로 올린 매출은 없다.

네이버 관계자는 "이해진 의장이 자신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것보다 20년을 먹고 살 수 있는 사업 모델을 구축하는 데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며 "체질 개선에 진심이기 때문에 4대 주주가 되는 선택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