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검찰총장에 취임한 윤석열 전 대통령./사진=뉴스1

2024년 1월 말, 매서운 겨울 바람을 맞으며 서초동 뒷골목 식당으로 걸어간 저녁의 장면이 생생하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마주앉아 밥을 먹었다. 박 전 장관은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장관 후보자였다. 박 전 장관과는 병아리 기자 시절부터의 인연이 있다. 내란 가담 혐의로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수감됐지만 내 기억 속 그는 여전히 강직하고 투박한 검사다.

그 1월 정권과 검찰은 모두 편치 않았다. 집권 2년 차 대통령과 정권 2인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대립했다. 당 최고위원이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트와네트와 비교했고, 한 위원장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김 여사 특검'을 수용할 태세를 보였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한 당시 위원장에게 사퇴를 종용했다. 대통령 보호막도 흔들리고 있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친윤'으로 분류된 검사들이 검찰 요직 곳곳에 포진돼 있었지만, 그들의 대통령에 대한 애정은 상당히 식은 상태였다. 이 균열의 복판에 '여사 문제'가 있었다.


박 전 장관에게 "어려운 길이 펼쳐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원칙대로 하면 되지 뭐. 내를 모리나?"라고 했다. 하지만 대화 중 간간이 검찰과 윤 대통령 사이에서의 중재자 역할에 대한 고민이 드러났다. 이원석 총장은 청와대 간섭을 막아줄 우산 구실을, 윤 대통령은 검사들의 불만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냄비 위의 돌멩이 역할을 자신에게 기대하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상황은 넉 달 뒤인 그해 5월 세상에 고스란히 표출됐다. 법무부가 검찰 간부 인사를 발표했다.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이 부산고검장으로 발령 받았다. 이원석 총장은 "협의 없이 진행된 일방적 인사"라며 공개적으로 반발했다(이에 대한 박 전 장관의 입장은 다르다. "총장과 충분히 얘기를 했다"고 당시 통화에서 말했다). 김 여사를 검찰청으로 불러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송 지검장에 대한 인사는 외견상 영전이었으나, 검사들 눈에는 변방으로 쫓아내기였다. 박 전 장관 입장에서는 대통령과 검찰의 충돌을 막을 궁여지책이었겠지만, 정권과 검찰 양쪽 모두의 병은 깊어갔다.

송 지검장 후임으로 검찰 내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던 이창수 검사장이 낙점됐다. 그해 가을 이원석 총장은 임기 만료로 검찰청을 떠났다. 그 뒤의 상황은 우리가 목격한 대로다. 김건희씨 조사가 청와대 근처의 경호처 건물에서 조용히 이뤄졌고, 결국 불기소 처분으로 끝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누구인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고, "성역은 없다"며 조국 전 장관을 수사해 명성을 드높였으며,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며 권력에 맞서 대권을 얻은 이다.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집권한 사람이 아내에 대한 수사에서는 검사들에게 충성을 요구했고, 언터처블 성역을 만들었고, 후배 검사들을 업연과 경력으로 누를 장관을 골랐다. 그리고 대통령 되기 전의 자신과 닮은 검사들을 압박하고 배척했다. 몇몇 검사가 이 기막힌 상황에 항의했으나 잠시 뿐이었다. 그렇게 검찰은 망했다.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근위대 '프리토리아니'를 조직했다. 황제를 보호하고 반역을 차단하는 제국 수호자 임무를 맡겼다. 그들은 군주의 가장 날카로운 칼이자 가장 든든한 방패가 됐다. 경호뿐 아니라 치안·사법·행정에도 관여했다. 힘이 점점 커진 프리토리아니는 황제를 시해하고 갈아치웠다. 황제 자리를 경매에 부친 적도 있다. 급기야 프리토리아니 출신이 황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2'에서 덴젤 워싱턴이 연기한 마크리누스가 바로 그다. 마크리누스는 217년 4월 집권(22대 로마 황제)에 성공했으나 1년 2개월 뒤 권좌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프리토리아니는 콘스탄티누스 1세 때 완전히 해체됐다.

형사소송법 개정안 국회 통과로 대통령이 국회에 재의를 요구하지 않는 한 두 달 뒤에 한국에 수사권을 가진 검사는 사라진다. 수사를 완전히 떠안은 경찰이 미덥지 않아 많은 이가 걱정한다. 애꿎은 국민의 피해를 줄이는 제도적 보완이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시계를 되돌릴 수는 없다. '선택적 정의'에 물든 검사들의 날카로운 칼이 스스로를 베어버렸다.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프리토리아니에 대해 "이토록 무시무시한 하인들은 언제나 필요하지만 종종 치명적이다"고 썼다. 한국 검찰이 1800년 전 그들처럼 몰락의 벼랑 끝으로 내달렸다.
이상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