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의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은행 창구에서 판매된 투자상품이 다시 금융당국의 검사대에 올랐다. 이번에는 은행 상장지수펀드(ETF) 신탁이다.
ETF 신탁과 ELS는 상품 구조가 다르다. ELS는 기초자산 가격이 사전에 정해진 조건을 충족하는지에 따라 수익과 손실이 결정되는 파생결합상품이지만, ETF 신탁은 고객의 운용 지시에 따라 은행이 ETF를 대신 매매하는 방식이다.
다만 은행 창구에서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 상품을 대면으로 판매하고, 고객보다 은행에 유리한 수수료 체계와 판매 인센티브가 작동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점에서는 ELS 사태 당시 불거진 판매 관행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상품 구조는 다르지만 누구에게 어떤 설명을 거쳐 판매했는지, 은행의 보상체계가 고객 이익과 충돌하지 않았는지가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오는 10일부터 KB국민·우리·NH농협은행을 시작으로 신한·하나·SC제일은행의 ETF 신탁 판매 실태를 순차적으로 검사할 계획이다. 지난 4월 은행권에 불완전판매 방지와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한 데 이어 지난달 말 소비자경보까지 발령했지만, 당부와 경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직접 검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4월 경고에도 커진 ETF 신탁…현장검사로 높인 수위
금감원이 ETF 신탁의 위험을 문제 삼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9일 주요 은행 부행장 11명을 불러 ETF와 지수연동예금(ELD)의 상품 선정부터 판매, 사후관리까지 전반적인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라고 주문했다.당시 은행권의 ETF 신탁 납입액은 2025년 상반기 4조9000억원에서 하반기 15조6000억원으로 세 배 넘게 증가했다. 올해 1~2월 납입액만 15조1000억원에 달했다. 국내 ETF 가운데 고위험 1등급 상품 판매 비중도 2025년 상반기 37.5%에서 하반기 49.7%로 높아졌고, 올해 1~2월에도 48.1%를 기록했다.
금감원은 은행이 비예금상품위원회를 통해 원금손실 위험과 투자대상을 면밀히 검토한 뒤 판매할 ETF를 선정하고, 시장 변동성이 커질 경우 고위험 상품의 고객별 판매한도를 축소하도록 주문했다. 부적합한 투자성향의 고객에게 ETF를 권유하지 않도록 PB센터와 영업점 직원 교육 및 자체 점검도 강화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은행 신탁을 통한 ETF 투자가 증권사 직접 거래와 다르다는 점을 고객에게 충분히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 신탁은 실시간 매매와 가격 지정이 어렵고, 신탁수수료와 중도해지수수료가 별도로 발생한다.
그러나 금감원이 지난해 실시한 미스터리쇼핑 결과를 보면 은행들은 위험등급과 운용자산 등 법에서 정한 설명사항은 대체로 준수했지만, 정작 소비자에게 필요한 은행 신탁과 증권사 직접 매매의 차이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시간 거래가 불가능하고 추가 수수료가 발생한다는 내용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당시 금감원에는 은행 신탁으로 ETF를 주문한 뒤 체결이 지연돼 원하는 가격에 매수하지 못했다는 민원과 중도해지수수료를 안내받지 못했다는 민원도 접수됐다. 본인의 동의 없이 자동매도가 설정돼 추가 수익 기회를 잃었다는 사례도 있었다.
당국의 경고에도 ETF 신탁 판매와 은행의 수수료 수익은 빠르게 늘었다. 2025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SC제일·NH농협은행 등 6개 은행의 ETF 신탁 판매액은 64조원, 계약 건수는 103만건으로 집계됐다. 지난 5월 판매액은 10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12월의 8.8배에 달했다. 같은 기간 은행의 ETF 신탁 수수료 수익은 5864억원이었다. 지난 5월 한 달 동안 거둔 수수료만 1036억원으로 지난해 12월보다 10.2배 증가했다.
당국이 특히 주목한 것은 고객의 거래 행태와 맞지 않는 수수료 구조다. 전체 ETF 신탁 거래의 94.6%가 가입 후 6개월 안에 매도됐지만, 단기 투자자에게 불리한 선취수수료 적용 비중은 91.7%에 달했다. 선취수수료는 가입할 때 투자금의 약 1%를 한번에 내는 방식이다. 반면 후취수수료는 보유기간에 따라 일할 계산되기 때문에 투자기간이 짧을수록 고객에게 유리하다. 그런데 10일 안에 해지한 고객의 98%, 1개월 안에 해지한 고객의 96.4%가 선취수수료를 선택했다.
목표수익률을 지나치게 낮게 설정한 계좌도 적지 않았다. 목표수익률이 5% 이하인 계좌가 전체의 58.1%, 3% 이하인 계좌도 20.8%였다. 목표수익률에 도달하면 ETF가 자동 매도되기 때문에 목표치를 낮게 설정할수록 매도와 재가입이 반복될 가능성이 커진다. 선취수수료 상품이라면 다시 가입할 때마다 수수료도 새로 발생한다.
2025년 1월1일부터 2026년 6월5일까지 ETF 신탁에 가입했다가 해지한 고객들이 낸 선취·후취 수수료는 총 3948억원으로 집계됐다. 고객이 실제 투자기간에 적합한 수수료 방식을 선택했다고 가정했을 때의 수수료 545억원보다 7.2배 많은 규모다. 같은 기간 고객이 거둔 ETF 매각차익 2조9100억원의 약 14%가 은행의 신탁수수료로 돌아간 셈이다.
이번 검사에서는 은행이 고객에게 선취·후취수수료 차이를 충분히 안내했는지, 낮은 목표수익률과 반복매매를 사실상 유도했는지,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를 지켰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직원의 성과평가체계가 고객 수익보다 판매액과 수수료 수익을 우선하도록 설계됐는지도 들여다볼 가능성이 크다.
ELS와 상품 다르지만…은행 창구 판매 반복 논란
ETF 신탁을 '제2의 ELS'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두 상품은 구조와 손실 발생 방식이 다른 데다, 은행권도 ELS 사태 이후 고위험 금융상품의 판매 절차와 설명 의무를 대폭 강화해 왔다는 입장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ELS 사태 이후 상품 판매 절차와 설명 의무를 강화했다"며 "ETF 신탁 역시 수수료 방식에 따른 차이와 투자기간별 유불리를 고객에게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다만 두 사안 모두 은행 창구라는 판매 경로에서 문제가 불거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은행을 예금과 같은 안전한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곳으로 인식하는 고객이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 상품에 가입했고, 판매 직원의 설명과 권유에 크게 의존했다는 점이다.
고령층 등 투자 취약계층의 참여 비중도 적지 않았다. ETF 신탁 가입자의 평균 연령은 59세였고 대면 가입 비중은 93.3%에 달했다. 65세 이상 투자자 비중도 29.9%였다. 올해 5월 ETF 신탁을 매수한 고객 가운데 65세 이상 비중은 31.7%까지 높아졌다.
홍콩 ELS 사태 이후 금융당국이 강조한 것도 상품의 사후 배상보다 판매 단계에서의 예방이었다. 고객의 투자목적과 위험 감수 능력에 맞는 상품을 권유하고, 판매 수수료와 직원의 성과보상체계가 고객 이익과 충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ETF 신탁에서 나타난 단기 반복매매와 선취수수료 집중 현상은 ELS 사태 이후 강화한 판매·관리 체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했는지 의문을 남긴다. 법정 설명사항을 형식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치고 고객이 투자 판단에 필요한 비용과 거래 방식의 차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면, 강화된 판매규율이 일선 창구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에 금감원은 업계·협회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ETF를 포함한 신탁의 선·후취수수료, 중도해지수수료, 매매수수료 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계획이다. 아울러 신탁 관련 내부 성과평가체계와 판매절차도 개선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금융소비자 중심의 전사적 ETF 판매전략·원칙을 수립하고 영업점에서 일관되게 적용되도록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창구직원 개인역량에 의존한 단기매매 위주의 권유에서 벗어나, 자산수준·연령대 등 고객군별 투자목적과 기간에 부합하는 판매 전략을 수립하고 일선 영업점에 일관되게 적용하도록 판매 절차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