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보험 설계사, 학습지 교사, 배달 라이더, 골프장 캐디 등을 폭넓게 근로자로 인정하는 '근로자 추정제'를 연내에 도입할 계획이다. 같이 일하는 보험설계사 등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을 사업자가 증명하지 못하면 일단 근로자로 판단하는 제도다. 개인사업자 신분이던 이들이 근로자로 인정받게 되면 처우와 업무환경이 개선될 전망이다. 하지만 인력 운용의 경제적 부담이 커지는 사업주들이 일감을 줄이면서 실직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고용노동부는 4일 특수고용직·플랫폼 근로자·프리랜서에 '근로자 추정제'를 적용하기 위해 올해 12월까지 근로기준법을 고치겠다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작년 말 여당 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경제계의 반발에 부딪쳐 진척되지 못한 법안을 연내에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특고·플랫폼 근로자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으려면 스스로 근로자임을 입증해야 했는데, 제도가 도입되면 일감을 주는 사업자가 '근로자가 아님'을 입증할 책임을 지게 된다.
근로자로 인정된 특고·플랫폼 근로자에게 사업자는 4대 보험, 퇴직금, 주휴수당, 연차 유급휴가 등을 제공할 의무를 지게 된다. 주 52시간 근무제 등 근로시간 규제도 지켜야 한다. 근로자의 직업 안정성과 처우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들에게 일을 맡기는 보험 판매업자, 학습지 회사, 택배 대행업체 등의 사업성이 악화돼 고용을 줄이면,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근로자 추정제가 도입되면 근로자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는 특고·플랫폼 근로자와 사업자 간의 충돌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근로자들 사이에서 '노-노 갈등'이 불거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본업 외에 추가 소득을 얻기 위해 퇴근 후 배달 라이더로 일하는 'N잡러', 짧은 시간 일하면서 고소득을 얻는 프리랜서 등 기업에 소속된 근로자가 되길 원치 않는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적 고용형태에서 벗어난 플랫폼 근로자 등 '긱 워커(Gig Worker)'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를 만드는 건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부담을 한꺼번에 기업에 떠넘긴다면 일자리 급감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때문에 원청 기업과 하청 노조의 갈등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근로자 추정제까지 도입한다면 우리 사회의 노사갈등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 지금은 사회적 파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새 노동정책에 드라이브를 걸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