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미 관세 협상을 최전선에서 이끌어온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직권면직됐다.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 통상 수장을 교체한 것은 이례적이다. 정부가 면직 사유를 밝히지 않으면서 배경을 두고 관측이 무성하다.
산업부는 15일 0시를 기해 여 본부장이 직권면직됐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무직 인사는 임면권자의 권한이자 정무적 판단 영역으로 부처 차원에서 배경을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통상 현안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별도로 밝힐 입장은 없다"고만 했다.
여 본부장은 지난해 6월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재기용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 통상정책국장과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대표적 '미국통'이다. 2017~2019년 주미대사관 상무관으로 트럼프 1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과 철강 232조 조치를 담당했고, 공직을 떠난 뒤에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국제무역정책을 연구했다.
여 본부장은 미국무역대표부(USTR)를 상대로 농산물 등 비관세 장벽 협상을 총괄해왔다. 관세 합의 이후에도 기존 합의에서 확보한 이익을 지키면서 미국의 추가 통상 조치가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문제는 시점이다. 한미 간 통상 현안은 여전히 산적해 있다. 기존 관세 합의 이행과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의 후속 협의가 진행 중이고, 미국의 무역법 301조 조사와 품목별 관세 대응도 남아 있다. 최근에는 반도체 핵심 원료인 폴리실리콘 등 전략산업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 조치까지 현안으로 떠올랐다.
대미 투자 패키지는 협상 타결 이후에도 논란이 이어져 온 사안이다. 투자금의 성격과 수익 배분 구조, 집행 방식을 두고 한미 간 인식차가 좁혀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이 대통령도 지난해 10월 주요 쟁점을 두고 양국 논의가 교착 상태라고 밝혔다. 다만 이번 인사가 이 사안과 직접 연결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산업부는 본부장 교체와 무관하게 대응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대미 협상이 통상교섭본부 내 실무 조직을 중심으로 진행돼온 만큼 당장 정부의 협상 기조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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