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가운데)이 지난 1월 4일 극초음속미사일 발사 훈련 참관하고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올해 안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날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당시 북한을 '핵보유 세력(Nuclear Power)'으로 부르는 등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했지만, 핵무기 수량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그동안 북한이 60개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또 다른 백악관 행사에서 '김 위원장과 관계를 재개하려는 목표가 여전히 비핵화인가. 이번에는 왜 성공할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며 "나는 김정은과 좋은 관계"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수십 년간 미국 대북정책의 핵심 기조였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김정은과의 '거래'를 위해 기존 정책 기조를 바꿀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연내 회동 가능성은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김정은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북핵 수량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정책의 목표를 '비핵화'에서 '거래'로 선회할 경우 북한 핵 보유의 사실상 인정과 그 상태에서 확장만 억제하는 핵 동결,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대북 제재 완화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우려된다. 그렇게 될 경우 그 파장은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북핵을 관리 대상으로만 삼으려 한다면 김정은 정권이 그토록 바라던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미국 정부가 사실상 용인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진짜 의도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란 전쟁 장기화에 따른 불만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김정은 카드'를 활용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 정치적 성과를 위해 '나쁜 합의'를 서두른다면 한미 동맹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신뢰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 1970년 발효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근간으로 유지돼 온 국제 비확산 체제가 동아시아에서부터 흔들릴 위험도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불신과 자체 핵무장론이 확산되면 동북아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핵 경쟁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

북한군의 파병을 받은 러시아와 최근 북한에 더욱 밀착한 중국은 이미 북핵을 사실상 묵인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5년 만에 방한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도 북한 '비핵화'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마저 김정은의 요구대로 북핵을 인정한다면 그 충격과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의 몫이 된다. 미국과 북한의 대화 재개를 반대할 일은 아니지만, 정부는 어떤 합의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원칙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점을 미국에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의 생존이 걸린 문제를 트럼프와 김정은의 거래에 맡겨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