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이 한문, 산스크리트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 다양한 고전어를 능숙하게 현대어로 번역할 수 있게 되고 인간에 필적하는 추론 능력까지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제 낯설지 않다. 얼마 전 열린 국제 디지털인문학협회(ADHO) 연례 학술대회에서는 인공지능의 이러한 고전어 이해 및 추론 능력을 활용하여 대량의 고전어 문헌 분석을 자동화하려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소개되었다.
필자 역시 수천 개의 한문 전기(傳記)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하여 동아시아 불교 사상의 통시적 발전을 추적하는 한국연구재단 과제를 발표하였다. 과거에는 다수의 전문 연구자와 협업해야만 수행할 수 있었던 성격의 대형 프로젝트를 이제는 개인 연구자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홀로도 시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의 뛰어난 고전어 번역·이해 능력은 기정사실이 되었고 고전 연구 일선에서도 인공지능이 전방위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지만, 필자는 고전어 전문가 양성에 우리 사회가 여전히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고전 연구는 그 의의가 단지 고전 문헌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찾아내는 것에 있지 않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고전학은 당대 사회의 문제의식을 깊이 있게, 다각도로 성찰할 수 있게 돕는 주요한 매개이자 수단으로서 기능해왔다. 유럽 르네상스기의 그리스어·라틴어 고전 연구가 토대가 되어 근대적 인문주의의 이상이 정착한 과정이 그러하였고, 송명대 유학자들이 선진(先秦) 고전의 재해석을 토대로 새로운 도덕형이상학과 정치철학의 체계를 세운 과정이 그러하였다. 최근 한국의 2030 세대에서 부는 이른바 '힙불교' 열풍도 불교 고전의 메시지가 재해석을 거쳐 현대 사회와 공명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고전어 능력이 아무리 완벽에 가까워진다고 해도, 고전 연구는 원전을 객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이끌어내고 심화하는 것으로써 완성된다. 이렇게 고전이 가진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중에서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의미 있는 방식으로 참신한 해석을 제시하는 일은 인간 자신이 고전어를 완전한 장악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나아가 고전어 독해 능력은 인간의 실존 자체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그 어떠한 경제적 보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도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유년기의 체험과 고민을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전은 인류 공동체가 수천년간 쌓아온 경험과 사유를 담고 있는 소중한 기억의 매체이다. 이미 인공지능이 고전어를 잘하게 되었다는 이유로 이러한 기억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온전히 기계에게 위임하는 것은 유년기의 기억을 포기한 개인이 더 이상 그 개인이 아니듯이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의 누군가는 인류 공동체 기억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인간 고유의 과업을 분담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인간으로 남을 수 있다.
국제 사회의 고전어 교육을 뒷받침해온 큰 동력이 아직 번역되지 않은 고전 문헌을 현대어로 번역하고 연구할 전문 인력을 양성하려는 데에 있었음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인공지능의 고전어 번역 능력이 인간에 필적하게 된 지금 종래와 같은 고전어 훈련의 필요성에 대해 회의를 품는 연구자와 학생이 생겨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번역이 고전학의 전부는 아니다. 고전어를 익히고 다루는 인간의 역량은 기계가 온전히 대신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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