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최근 개헌론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나섰다. /사진=뉴스1


논란의 발단은 3주 전 조정식 국회의장의 기자간담회였다. 조 의장은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국민이 선택할 문제"라고 말했다. 당장 현직 대통령의 연임을 가능케 하는 개헌의 여지를 남긴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으며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조 의장은 '오해'라며 진화에 나섰다. 실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정치 경험이 많은 6선의 국회의장이 이런 실수를 할 리가 없다. 전형적인 여론 떠보기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리고 얼마 뒤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의힘 의원들과 골프 회동을 가진 사실이 알려졌고, 공교롭게도 그들은 모두 개헌론자였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인 김태호 의원은 이 대통령이 '임기단축'까지 언급하며 분권형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한 사실을 공개했다. 이에 청와대 관계자가 "국회 권한이 강화된 4년 중임 대통령제가 수용성이 가장 높다"고 밝힌 데 이어 이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이 대통령은 SNS를 통해 "대통령 임기는 4년 중임 또는 연임제로 변경해 중간평가를 통한 책임정치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게 공약이자 일관된 입장"이라며 필요하다면 이를 위해 임기를 단축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개헌론을 제기한 일련의 과정과 형식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더구나 후보 시절 권력구조 개편을 강력하게 피력했던 것과 달리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이 문제를 회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다 갑자기 임기단축이라는 배수진까지 치고 개헌 카드를 꺼내드니 그 배경을 놓고 여러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 대통령은 "이원집정제나 내각제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국민 여론에 비춰 가능하지도 않다"며 다른 권력구조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헌법은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고 중임할 수 없으며(70조),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 개헌은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게는 효력이 없다(128조)'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는 것은 이 대통령이 만일 개헌이 되더라도 연임 내지 중임 의사가 없다는 식의 딱 부러진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임기 단축'은 얼핏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는 결단으로 보이지만 만약 개헌을 통해 중임이나 연임이 가능해지고 현직 대통령에게도 이를 허용하는 경우라면 현직만큼 유리한 사람이 없다.

개헌이 성사되려면 우선 단일안에 의견이 모아져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뜨거운 열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개헌에 주저하는 정치세력을 압박하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1987년 개헌만 해도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고, 장기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공감대가 있었다. 현재 모든 여론조사에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지만, 이는 단순 선호조사에 불과하기 때문에 추동력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과거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모두 흐지부지되었던 결정적 이유는 국민적 공감대가 결여됐기 때문이다. 현재의 개헌 논의는 여권내에서도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고, 야당은 "연임 개헌을 통한 독재 시도"(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결국 이번에도 개헌론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개헌 논의가 전혀 진척이 되지 않는데도 '연임 개헌' 문제에 대해 직접 입장을 내놓지 않는 이 대통령의 속내가 더욱 궁금하다.

1987년 현행 헌법이 탄생한 이후 불행한 대통령을 양산한 것은 제왕적 대통령 권력에 기인한다는 게 개헌론자의 주장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선 안될 게 있다.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4년 중임 대통령제, 분권형 대통령제도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4년 중임제의 경우 현직 대통령이 당선되는 순간부터 재선을 위해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할 수 있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서는 국민이 대통령을, 의회가 총리를 선출하면 대통령과 총리 사이 권력 다툼으로 아무것도 안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무리 훌륭한 헌법도 그 자체로 민주주의를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아르헨티나의 1853년 헌법, 필리핀의 1935년 헌법은 미국 헌법을 베끼다시피 했다. 하지만 두 나라는 각각 군사 쿠데타와 포퓰리즘, 장기독재로 민주주의를 꽃피우지 못했다. 40년 전인 1987년 10월 12일 이재형 당시 국회의장은 개헌안 국회 통과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개헌이 곧 민주화는 아니다. '좋은 헌법'에 정치인의 슬기, 국민적 양식과 협력이 플러스 되어야만 그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금과옥조로 삼을 말이다.

박창억 동행미디어 시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