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청와대와 사법부의 충돌이 정면 대치로 번지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최근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신임 대법관 후보로 서면 제청했다. 사전 조율 뒤 대통령을 만나 대면 제청하던 관례를 깬 것이다.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21일 "대통령의 임명권을 존중하지 않은 일방적 통보"라며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견이 있는 손 후보자에 대해선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지 않고 제청을 반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관측도 나온다. 현실화할 경우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충돌하는 전례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정치권은 갈등을 더욱 키우고 있다. 범여권 법사위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조 대법원장이 정권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조 대법원장이 과거 윤석열 전 대통령과는 세 차례 직접 만나 대법관 후보를 제청했으나, 이재명 대통령과는 충분히 협의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대법원장 권한을 줄이는 내용의 법원행정처 폐지 논의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번 논란이 사법부 길들이기 차원이라며 오히려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우선 규명해야 할 것은 엇갈린 사실관계다. 대법원은 청와대와 막판까지 협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대통령 면담 기회도 얻지 못했다고 밝혔다. 서면 제청 방식 역시 민정수석실과 사전 협의를 거쳤다는 입장이다. 반면 청와대는 일반적인 인사 논의만 있었을 뿐 서면 제청 등 구체적인 방식은 협의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면담 요청을 거부했다는 주장도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 양측의 진실 공방에 국민 혼란만 커지고 있다. 청와대와 대법원은 접촉 일시와 협의 내용, 면담 요청 경위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 공방을 끝내야 한다.
이번 갈등의 배경에는 현 정부와 조 대법원장 사이에 쌓인 불신이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대선 직전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뒤 여권의 사퇴·탄핵 압박이 이어졌다. 대법관 임명 절차를 놓고도 양측의 해석은 엇갈린다. 청와대는 관례와 대통령의 임명권을 강조하지만, 대법원은 대통령과의 사전 협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은 최근 국회에서 "헌법에 따라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를 제청할 권리가 있고, 대통령과 국회는 각각 임명권과 동의권을 행사하면 된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협의가 필수라면 국회와도 협의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이런 충돌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정 법원조직법에 따라 2028년부터 대법관 12명이 단계적으로 증원된다. 기존 대법관의 임기 만료까지 고려하면 이 대통령은 임기 중 22명의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다. 대법관 인선 때마다 소모적인 기싸움과 정치 공세가 반복된다면 재판 지연과 사법 공백의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한다. 어느 한 기관도 사법부 인사를 독점하지 못하게 한 장치다. 청와대는 "전례 없는 헌정사 초유의 일"이라면서도 특정 후보는 안되고 특정 후보가 돼야 한다는 이유는 밝히지 않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제청권을 존중하고, 대법원도 책임 있게 소통해야 한다. 삼권분립은 권한 다툼의 무기가 아니라 상호 견제와 존중의 원리다. 모두가 헌법의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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