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만호를 공급하겠다고 한 게 1년이 안됐는데 또 23만호 이상을 공급하겠다고 하네요.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공급될지는 봐야죠. 나중에 어떻게 바뀔지 몰라요."
정부가 지난해 9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135만호에 달하는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내용의 9.7 대책을 내놓은 지 채 1년도 안 됐다. 올 1월에도 수도권에 5만9000호를 공급하는 내용의 1.29 대책이 나왔다. 이달 13일에는 23만호를 더 얹은 8.13 수도권 주택공급 종합대책이 발표됐다. 135만호에 23만호를 더하면 무려 158만호에 달하는 물량이다. 앞서 발표된 8.3 세제개편안도 있다. 집값을 잡겠노라는 정부의 의지가 공급과 세제, 금융규제까지 전방위적으로 가해지는 모습이다.
시장의 반응은 아직 미적지근하다. 수십억에서 100억원을 넘는 초고가 주택의 호가가 떨어지는 등 관망세가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집값이 실거래가에 반영돼 떨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공급 대책은 태생적으로 사업 시행계획과 인허가, 시공사 선정 등을 제외하고 공사기간만을 최단으로 예상해도 3~5년이 걸린다. 지금 정부의 공급대책은 실제 10년 이상이나 걸려야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몇 년 뒤 물량이 쏟아지니 일단 무주택으로 버텨보자"는 계산이 성립하려면 그 약속이 최소 3~5년, 길게는 10여년 뒤에도 그대로 지켜진다는 믿음이 전제돼야 한다. 공급 대책은 시장 심리에 즉각 작동하는 정책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신뢰가 쌓여야 비로소 힘을 발휘하는 정책이라는 얘기다.
주택 공급은 주택난이 심할 때는 물론 시장이 잠잠한 시기에도 꾸준히 추진돼야 집값 안정의 효과를 낸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러나 역대 정부의 대규모 공급 대책은 대개 집값이 치솟아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만 등장하는 소방수 역할만 하는 데 그쳤다. 그마저도 정권이 바뀌면 쉽게 뒤집혔다. 이명박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보금자리주택은 박근혜 정부 초기 주택시장 침체를 이유로 전면 폐지됐다. 문재인 정부의 공급 대책들도 정권 교체와 함께 동력을 잃었다. 2018년 발표된 3기 신도시 역시 우선순위에서 밀리며 고양 창릉 등 핵심 지구는 아직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이번 8.13 대책은 다를까. 용산공원 부지를 주택 용도로 돌릴지, 그린벨트를 어디까지 풀지를 놓고 정부와 서울시, 여야가 팽팽히 맞서는 모습이 이를 보여준다. 발표는 요란했지만 정작 핵심 쟁점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충분한 숙의와 공론화 없이 대책부터 던졌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정책은 신뢰를 먹고 자란다. 정권이나 시장 상황이 바뀌면 이번에도 흐지부지될 거라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 한 23만호가 아니라 200만호를 약속해도 그 긴 시간을 믿고 버틸 수요자는 많지 않다. 단기적으로 세제개편이나 대출규제로 집값이 떨어지는 효과가 있기는 했지만 집값은 이내 반등하곤 했다. 공급대책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던 탓이다.
업계와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주문하는 것도 결국 하나다. 정권이 바뀌고 여야 구도가 달라져도 흔들리지 않을 예측가능성이다.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정치적 셈법에 휘둘리는 구조는 통하기 어렵다. 합의되지 않은 카드를 그때그때 불 끄듯 내놓을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정부와 서울시, 여야가 머리를 맞대 실현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공급 로드맵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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