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서울 봉은사에서 불의에 맞서고 약자를 보듬어온 봉은사 전 주지 명진 스님의 영결식이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엄수됐다. 사진은 25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엄수된 명진스님 종교시민사회장 영결식에서 스님들이 헌화하는 모습. /사진=뉴스1


권력에는 거침없이 맞서고 힘없는 이들은 따뜻하게 감싸 안았던 봉은사 전 주지 명진 스님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봉은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엄수된 영결식에는 불교계 스님들을 비롯해 개신교·천주교 등 종교계 인사, 시민사회와 학계 관계자, 일반 시민 등 1000여명이 찾아와 스님의 마지막 길에 조의를 표하며 배웅했다. 영결식은 종을 다섯 번 치는 명종을 시작으로 추모 절차와 행장 소개, 영결사와 추도사, 추모 노래, 헌화 순으로 숙연하게 진행됐다.



장사익과 봉은사 합창단이 부르는 추모곡 속에 영결식이 끝난 뒤, 스님의 법구는 출가했던 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로 옮겨져 오후 3시쯤 화장(다비식)을 치른다. 스님은 49재를 마친 뒤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되어 영원한 안식에 들 예정이다.

앞서 지난 22일 오전 명진 스님은 제주 서귀포시 하예포구 인근 바다에서 아침 수영을 하던 중 안타까운 사고(심정지 추정)로 세상을 떠났다. 세수 76세. 장례위원회와 유족 측은 일부 매체에 보도된 '프리다이빙 사고'는 사실과 다르며 평소 무릎 통증 완화와 참선 정진을 위해 매일 해온 바다 수영 중 일어난 사고라고 바로잡았다. 경찰과 해경은 시신에 특별한 상처나 범죄 혐의점이 없어 부검 없이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강자에게 굴하지 않고 약자를 품은…'행동하는 선객'의 52년 법랍

영결식에 참석한 종교·시민사회 인사들과 추모객 1천여 명이 명진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사진은 25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명진 스님 영결식이 엄수되는 모습. /사진=뉴시스


195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1969년 해인사 백련암으로 입산한 명진 스님은 젊은 시절 베트남전 참전이라는 남다른 생사 현장을 경험한 뒤 1974년 법주사에서 탄성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1987년 불교계를 대표해 민주화운동에 전면 참여했고 1994년 조계종 종단 개혁을 주도하며 중앙종회 부의장 등을 역임, 불교계 내부의 자정과 쇄신을 주도했다.

특히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 강남 봉은사 주지를 지내는 동안 사찰 재정을 전격 공개하고 '1000일 기도'를 봉행하며 도심 포교의 지평을 열었다.



동시에 봉은사 직영 사찰 전환을 둘러싸고 종단 총무원과 대립하며 종단 운영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주지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불교계의 변화를 촉구하다 2017년 승적(스님 자격)을 박탈당하는 징계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스님은 징계 무효 소송을 냈고 1·2심 모두 승소한 끝에 올해 초 7년 만에 정식 스님 자격을 되찾았다.

이날 영결식에서 장의위원장 도공 스님은 "말에 거침이 없고 행동에 물러섬이 없던 참된 수행자였다"고 명진 스님의 삶을 기렸다. 영진 스님도 추도사에서 "봉은사 주지를 맡아 당시 정권의 잘못을 꾸짖고 약자들을 포근히 품어 안았다"고 회상했다.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와 염무웅 전 관장 역시 "반민중 정권들 시대에 스님의 외침 없이 어떻게 견뎠을까 싶다"며 "용산참사, 세월호 참사, 비정규직 노동자 등 가장 아프고 힘없는 사람들의 곁을 먼저 찾아간 이 시대의 참된 스승"이라고 고인의 넋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