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컴퓨터 메인보드 위에 위치한 CXMT 로고. /로이터=뉴스1


세계 시장의 판도를 바꾼 중국 TV 제조 기업들의 성장 방식이 반도체 산업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생산 기반을 넓히고 거대한 내수시장에서 경험을 쌓은 뒤 글로벌 시장과 고부가 영역으로 확장하는 방식이다. 중국의 추격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기술 초격차 유지에 집중하고 이를 뒷받침할 정부의 지원책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6일 외신 등에 따르면 상하이증권거래소는 지난 21일 양쯔메모리(YMTC) 모회사 창장춘추홀딩스(CCSH 코퍼레이션)가 커촹반(과학기술주 전용 시장)에 제출한 기업공개(IPO) 신청서를 수리했다. YMTC는 신주 19억8000만~24억3000만주를 발행해 최대 330억위안(약 6조8000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확보한 자금은 생산라인 고도화와 연구개발에 투입한다.



창신메모리(CXMT)는 지난달 27일 커촹반에 입성했다. 공모 규모는 579억2000만위안(약 12조5000억원)으로 중국 반도체 기업 IPO 가운데 역대 최대다. CXMT는 확보한 자금을 토대로 기존 D램 생산 기반 고도화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인공지능(AI) 메모리 개발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두 회사의 행보가 중국 TV 제조 기업인 TCL·하이센스와 유사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TCL과 하이센스는 중국 중앙·지방정부의 정책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중앙정부는 디스플레이 산업 육성정책과 세제 혜택을 마련하고 지방정부는 산업펀드를 통해 생산시설에 직접 투자했다. 가전 구매와 노후 제품 교체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내수시장도 키웠다.

TCL과 하이센스는 중국 내수시장에서 중저가 LCD TV 판매를 늘리며 생산 규모를 키웠다. 자국 패널과 부품 공급망을 활용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제품 개발·판매 역량도 축적했다. 이후 북미와 유럽 등 해외시장으로 판로를 넓혔고 삼성전자·LG전자가 주도하던 TV 시장의 주요 업체로 성장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TCL과 하이센스의 글로벌 TV 출하량 점유율은 각각 15.9%, 15.3%로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메모리 기업들을 향한 중국 중앙·지방정부의 지원은 보다 직접적으로 이뤄졌다. 중국 중앙정부는 반도체 육성 펀드인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대기금'을 통해 자금을 공급했다. 지방정부도 산하 투자기관을 통해 지원사격했다. 막대한 투자가 선행하고 수익을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 산업인 만큼 중앙·지방정부의 지원은 두 회사의 버팀목이 됐다.

내수시장은 제품을 검증하고 기술을 다듬는 시험대였다. CXMT는 자국 빅테크·스마트폰 기업에 납품하며 결함을 보완하고 수율과 품질을 높였다. YMTC도 자국 기업을 대상으로 낸드와 기업용 SSD 공급을 확대했다.

AI발 메모리 초호황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선두 기업들이 HBM 등 고부가 제품에 집중하는 사이 CXMT·YMTC는 범용 제품 시장을 파고들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CXMT가 2분기 글로벌 D램 매출 점유율 7%로 세계 4위를 차지했다고 집계했다. 지난해 1분기 점유율(3%) 대비 2배 이상 뛰었다. YMTC의 낸드 출하량 점유율도 같은 기간 8%에서 14%로 상승하며 처음으로 세계 3위에 올랐다.

TCL·하이센스가 중저가 LCD TV에서 점유율을 높인 뒤 대형·미니LED TV로 영역을 넓힌 것처럼 CXMT와 YMTC도 고부가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CXMT는 HBM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YMTC는 AI 서버향 기업용 SSD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신현철 광운대 반도체시스템공학부 교수는 "고부가 제품 영역에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중국 기업 간 기술 격차가 크지만 일부 범용 제품군에서는 0.5세대까지 좁혀졌다"며 "중국 기업들의 성장 속도가 빠른 만큼 국내 기업들은 기술 고도화·제품 차별화를 통한 초격차 유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정부도 미국·일본 등 경쟁국에 상응하는 지원책이 필요하다"며 "용인·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속도가 붙도록 각종 인허가 절차를 단축하고 기반시설을 조속히 마련하는 한편 세제 혜택 등 직접적인 지원도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